한국은행 조사국이 20일 블로그에 올린 ‘1월 금융통화위원회 결정 시 한은의 경기 평가’라는 이름의 글은 “이번 1월에는 그동안의 관례에서 벗어나 예외적으로 2024년 4분기 성장률과 2025년 전망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돼 있다. 한은은 “지난해 11월 전망 이후 예기치 못한 정치적 리스크의 확대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진단해 그 결과를 2월에 공식 전망치가 나오기 전이라도 대외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경제주체들의 의사 결정과 통화정책 커뮤니케이션에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고 밝혔다.
한은은 매년 분기 중간인 2·5·8·11월에 경제 전망을 공식 발표한다. 내부적으로는 매번 금융통화위원회 때마다 위원들이 성장률과 물가 등 주요 경제지표에 대한 예상치를 보고하지만 외부에 이를 공개하지 않는다. 그만큼 이번 성장률 조정은 이례적이라는 게 한은 안팎의 평가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지금까지의 관행을 깨고 중간에 성장률 예상치를 내놓은 것은 정치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경제와 대외 신인도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최근에는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의 법원 난입 사태로 정치권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공식 출범으로 대외 불확실성까지 커지고 있다.
한은도 이날 블로그에서 △주력 수출산업에서의 글로벌 경쟁 심화 △미국 신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같은 대외 여건 역풍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내 정치 불확실성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 따른 심리 위축 등을 리스크 요인으로 꼽았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은의 이례적인 성장률 조정에 대해 “국내 정치 리스크에 따른 내수 위축과 트럼프 신정부 출범에 따른 수출 축소 등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한은 안팎에서는 이창용 한은 총재가 갖고 있는 위기의식이 생각보다 크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금통위가 지난주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올해 성장률이 1.6~1.7%에 그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외부에 알려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치권에 성장률이 주저앉을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를 내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읽힌다. 한은의 사정에 정통한 금융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생각보다 경제가 좋지 않다는 점을 외부에 설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총재의 생각인 것으로 안다”며 “지난주 금통위 이후 기자회견에서 언급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 경우 성장 전망의 중간 공개가 공식화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계속되고 있는 정치 리스크가 한국 경제에 미칠 부작용에 대한 경고도 어떤 식으로든 필요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은은 “2025년 중 정치 불확실성의 경기 하방 효과는 -0.2%포인트”라며 정치권을 압박했다. 이지호 한은 조사국장은 “향후 정치 불확실성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만약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완화된다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의 크기도 더 작아질 것”이라며 “정치 불확실성이 다시 고조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리고 정치와는 별개로 경제정책이 일관성 있게 정상적으로 작동되도록 하는 것이 대외적으로 우리 경제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고 국내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데 필수적이라 하겠다”고 주장했다.
한은은 추가경정예산 편성의 필요성도 재차 강조했다. 여야에 정치적인 이해득실을 따지기 전에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는 압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은은 “앞으로 정부의 추가적인 경기 부양 시기·규모·대상도 2월 전망에서 중요한 고려 사항”이라며 “예를 들어 여야정 합의를 통해 추경 등 경제정책이 빠른 속도로 추진된다면 경기 하방 압력을 상당 부분 완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최남진 원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지금 금리 인하를 하기에는 부작용이 있으니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어필하려는 의도”라며 “추경은 대외 여건과 무관하게 할 수 있고 정치적 리스크는 한은이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한은으로서는 최적의 시나리오를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더 낮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것도 한은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요소다. 한은 사정에 정통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리 인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추경과 함께 이뤄져야 하는데 금리 인하 카드를 당장은 아껴야 하니 추경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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