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의(CEO)의 말 한마디에 한국 증시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유리기판으로 엔비디아의 공급망에 한층 더 깊숙이 파고든 SK하이닉스(000660)와 SKC(011790)는 급등한 반면 양자컴퓨터 관련 종목들은 급락한 데 따른 것이다. 증권가에서는 엔비디아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생산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데이터센터 등에서의 위상이 더욱 견고해지자 황 CEO의 발언에 시장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SKC는 전장 대비 19.35% 오른 16만 16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와이씨켐(112290)(19.27%), 기가비스(420770)(10.28%), 필옵틱스(161580)(7.86%) 등 유리기판 관련주들이 일제히 급등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전날(현지시간) CES 2025에서 황 CEO와의 만남 후 “방금 팔고 왔다”며 유리기판의 엔비디아 공급을 시사한 영향이었다.
유리기판은 AI 반도체 발전에 혁신을 가져다줄 소재로 꼽힌다. 유리기판을 사용하면 기존 대비 데이터 처리 속도는 40% 빨라지고, 전력 소비와 패키지 두께는 절반 이상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특히 SKC가 지분 70%를 보유한 앱솔릭스는 기술력이 경쟁사 대비 최소 3년 이상 앞서 있으며, 세계 최초로 미국에 양산 공장을 준공해 상업화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자율주행차든 로봇이든 두뇌와 심장은 엔비디아 칩을 사용하고, 연산은 엔비디아의 AI 개발 플랫폼 ‘쿠다(CUDA)’ 기반의 소프트웨어로 설계되며, 데이터들은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로 구성된 데이터센터가 처리한다”며 “(테슬라처럼 독자 생태계를 구축한 극소수 기업을 제외한) AI 생태계는 이미 엔비디아에 종속적인 상태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SKC뿐만 아니라 엔비디아로부터 HBM 경쟁력을 다시 한 번 인정받은 SK하이닉스도 5.29% 급등했다. 최 회장은 CES 행사에서 “(황 CEO와 만나) 최근 SK하이닉스의 HBM 개발 속도가 엔비디아의 요구보다 빨라지고 있다는 얘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이에 반해 황 CEO가 전날 “HBM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평가한 삼성전자(005930)는 2.09% 하락했다. 황 CEO는 전날 CES 기조연설에서 GPU 신제품에 마이크론의 D램만 사용된다는 취지로 말했는데, 시장에서의 파장이 커지자 회사 측은 하루 만에 황 CEO의 발언을 정정하면서 수습하기도 했다.
황 CEO의 발언으로 인한 불똥은 양자컴퓨터 종목으로도 옮겨 붙었다. 황 CEO가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기까지는 약 20년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말하자, 관련 종목들이 폭락한 것이다. 국내 증시에서 양자컴퓨터주로 분류되는 아톤(158430)은 전 거래일 대비 540원(7.45%) 하락한 6580원에 거래를 마쳤으며, 이외에 한국첨단소재(062970)(-10.54%), 아이윈플러스(123010)(-20.67%) 등이 곤두박질쳤다. 최보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양자컴퓨터의 대표 제품과 서비스가 구체화하기 전까지 관련주 주가는 대형 기술 업체의 실적 발표나 행사에서 발언 등에 따라 급등락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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