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완성차 최대 판매처인 미국에서 생산 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해외 수입차에 대한 고관세 등 무역 장벽을 예고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미국에서 늘어나는 완성차 생산량에 발맞춰 자동차 부품과 강판 등의 주요 공급망도 강화할 방침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이달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비해 현지 투자를 늘리고 있다. 지난해 말 연간 기준 최대 100만 대의 완성차 생산 능력을 확보한 데 이어 수년 내로 120만 대 생산 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이의 일환으로 지난해 10월부터 가동을 시작한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의 생산 능력을 현재 30만 대에서 50만 대로 확대한다. 현재 이곳에서는 현대차 전용 전기차(EV)인 아이오닉5를 생산하는데 앞으로는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아이오닉9 등으로 전기차 라인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전기차뿐만 아니라 현지 수요가 높은 하이브리드차(HEV)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량(PHEV), 주행거리연장형전기차량(EREV) 등으로 생산 차종을 다양화한다.
현대차그룹이 현지 생산을 늘리는 것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편관세 부과 등 급변하는 무역 파고를 넘으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당선인이 예고한 대로 해외에서 만든 수입차에 10~20%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판매량 중 절반을 국내 공장에서 조달하는 현대차·기아에는 악재로 작용하게 된다. 지난해 판매 신기록(170만 8293대)을 쓰는 등 성장세를 보이는 미국에서 투자를 지속해 시장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현지 생산에 필요한 부품 공급망도 강화한다.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10월부터 조지아주에 두 번째 전기차 전용 부품 공장을 가동했다. 핵심 부품인 전기차 구동(PE) 시스템과 배터리 시스템(BSA) 등을 조달한다. 2030년까지 13억 달러(약 1조 9000억 원)를 투입해 5곳의 부품 생산 거점을 구축한다.
자동차 강판 수요 증가에 따라 계열사인 현대제철이 미국 남부 지역에 직접 대형 제철소를 짓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현재는 국내에서 생산한 강판을 미국에 수출해 현대차·기아가 활용하는 방식이지만 앞으로는 현지에서 직접 생산해 공급망 리스크를 해소한다는 계획이다. 자동차 생산량을 고려할 때 제철소의 연간 생산량은 수백만 톤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제철 입장에서도 이번 투자를 통해 미래의 철강 관세 부과 등의 불확실성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2018년 미 정부는 한국산 철강재 263만 톤에 대해 25%의 관세를 면제하는 대신 넘어가는 물량은 수출할 수 없는 ‘수입쿼터제’를 도입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이 물량을 더 줄일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업계에서는 70억 달러(약 10조 원)에 육박한 투자 규모를 고려할 때 현대제철이 독자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2024년 3분기 기준 현대제철의 현금성 자산은 1조 2000억 원 수준이다.
이재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제철의 차입금은 약 10조 원 수준으로 연간 이자 비용만 약 4000억 원에 육박한다”며 “투자 자본을 현대제철이 100% 부담하기보다는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의 합작법인으로 사업이 진행되거나 현대제철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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