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국고채 전문딜러(PD) 입찰 담합 의혹에 대한 조사를 최근 마무리하고 제재 의견을 담은 심사 보고서를 이르면 다음 주, 늦어도 이달 중 발송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의 여파로 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공정위의 제재로 채권시장이 얼어붙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12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금융사들의 국고채 입찰 담합 의혹을 조사해온 공정위가 담합 혐의가 인정된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채권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정위가 법리 검토를 거쳐 심사 보고서 작성을 마무리한 것으로 안다”며 “법적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사 보고서는 검찰의 공소장 격이다. 공정위는 담합 혐의가 입증됐다고 판단할 경우 당사자에게 발송한다. 공정위는 지난해 6월 KB증권과 삼성증권·메리츠증권 등 증권사 11곳과 KB국민·농협·산업은행 등 은행 7곳을 대상으로 현장 조사를 벌였다. 공정위는 주요 국고채 거래 담당 직원의 휴대폰과 PC 등을 확보해 혐의 입증에 총력을 기울였다.
공정위는 PD들이 국고채 입찰 과정에서 손실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입찰 정보를 사전에 교환했다고 보고 있다. PD는 한국은행이 진행하는 국고채 경쟁입찰에 참여해 1차로 국고채를 매입한 뒤 기관이나 개인투자자에게 매각하는 역할을 맡는다. 통상 정부 입장에서는 낮은 금리(높은 가격)를 제시하는 순으로 낙찰한다. 하지만 공정위는 딜러들이 입찰 전 금리 담합을 메신저로 논의한 후 높은 수준에서 응찰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같이 공정위의 제재가 현실화되면서 당장 채권시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로 대외 신인도 악화로 환율이 급등하고 주가가 급락하는 등 경제가 출렁이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위 제재까지 더해지면 채권시장이 얼어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런던증권거래소그룹 산하 FTSE 러셀은 지난 10월 한국 국채를 1년간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11월부터 WGBI에 편입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비상계엄 사태로 국내 경제금융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공정위 제재까지 더해지면 외국인 투자자의 국채 접근성과 WGBI 실편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특히 국고채 입찰시 담합 등 국고채 시장 질서를 저해하는 경우 기재부에서 PD의 자격을 정지하거나 취소할 수 있는데 이 경우 국채를 인수할 주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나온다. 이 때문에 기재부에서는 예비전문딜러(PPD)를 대상으로 PD 추가 지정 등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 관계자는 “몇 개 증권사가 제재가 강하게 나오면 PD 자격을 취소할 수밖에 없어 채권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공정위 조사 여파로 기재부가 연말마다 PD와 진행하는 발행 전략 협의회도 올해는 금융사별로 따로 진행하게 됐다. PD사 전원이 모여 협의를 통상적 차원의 소통마저 공정위 조사로 위축되는 모양새다. 한 국고채 딜러는 “수익 사업도 아니라 사명감으로 하고 있고, 담합으로 얻는 이익 자체가 없는데 담합을 할 이유가 있겠냐”고 말했다.
거기에다 국고채 매입과 동시에 평가손실이 발생하는 등 손해를 감수하며 입찰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 측 주장이다. 기재부가 전담 딜러까지 지정하면서 PD들이 국고채 발행충격을 흡수하며 시장에 기여하고 있는데 이런 통상적인 의사 결정 구조까지 공정위가 엄격한 법적 잣대로 위법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같은 공정위의 고강도 조사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연초 “과점 체제인 금융과 통신 산업의 실질적인 경쟁 시스템 강화를 위한 특단 조치를 마련하라"는 지시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의 지시 이후 공교롭게 공정위가 담합이란 프레임으로 ‘LTV 담합’ 등 은행권을 대상으로 전방위적 조사에 나섰다.
다만 일각에서는 제재를 하더라도 시점은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사의 한 관계자는 “PD들이 담합을 했다면 제재를 받는 게 당연하다”면서도 “최근의 금융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그 시점은 조정하는 게 나아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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