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 해소를 위해 출범했던 여야의정 협의체가 출범 3주 만에 좌초 위기를 맞았다. 핵심 현안인 2025학년도 의대 정원 등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은 가운데 여당의 지역 의대 신설 지지를 놓고 의료계 반발이 커지며 의료계 단체들이 협의체 참여 중단을 선언한 상태다.
국민에게 '성탄 선물'을 약속했던 여야의정 협의체가 존폐 기로에 놓이면서 10개월을 향해 가는 의정 갈등의 출구도 다시 안개 속에 갇혔다는 평가다.
1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 중인 의료계 단체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대협회)는 이날 열리는 4차 전체회의에는 참석할 예정이다. 다만 두 단체 모두 이날 회의가 마지막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의학회는 지난달 29일 임원회의를 거쳐 협의체 참여 중단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의대협회도 같은 날 참여 지속 여부를 논의한 뒤 이날 회의에 참석하는 이종태 이사장에게 결정을 위임하기로 했다. 두 단체가 협의체 출범 3주 만에 참여를 재고하게 된 것은 우선 그간 논의에서 뚜렷한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앞선 세 차례 전체회의에서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자율성 보장 등에 대해선 일부 접점을 찾았으나, 2025·2026년 의대 정원 문제에 있어선 의정이 평행선을 달렸다. 최근 국민의힘이 경북 국립의대 신설을 강력히 지지한다고 밝힌 것도 의사 사회의 반발을 샀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대위가 의학회 등을 향해 협의체 탈퇴를 공개 요청하는 등 부담도 커졌다.
이미 야당과 전공의 단체 등이 없는 사실상 '반쪽' 협의체였기 때문에 의료계와 의대협회가 빠지면 사실상 존속이 의미 없는 상태가 된다. 이날 회의에서 이들 단체의 마음을 돌릴 만한 '깜짝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12월 말까지로 예고했던 존속 기간을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해체될 수도 있다.
다시 열렸던 대화의 문이 닫히면 의대 증원 정책 등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 사태는 다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된다. 오는 6일 수능 성적 통지. 11∼13일 의대 수시 합격자 발표 등 2025학년도 입시 일정도 속속 진행되며 사태가 해를 넘길 가능성도 짙어진다. 이러한 가운데 이달 초 있을 내년도 상반기 전공의 모집 공고와 의협 회장 보궐선거전 개시가 사태 향방의 가늠자가 될 수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내년도에 수련할 전공의 모집이 오는 5일 공고와 함께 수련병원별로 개시된다. 이르면 19일께 합격자가 발표되는데 전공의들이 얼마나 돌아올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전공의 복귀를 유도하기 위해 내년 5대 5로 조정하려던 수도권 대 비수도권 전공의 배정 비율을 현행대로 5.5대 4.5로 유지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한 상태다.
여야의정 협의체가 가동되는 동안엔 정부도 당장 전공의 복귀책을 내놓기보단 협의체 결과를 기다려본다는 입장이었다. 협의체에 기대를 걸기 어려워지면 전공의 모집에 맞춰 수련 특례나 입영 연기 등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비대위 체제로 운영 중인 의협의 경우 내년 1월 회장 선거를 앞두고 오는 2∼3일 후보 등록을 받는다. 전공의와 의대생을 끌어안은 의협 비대위의 강경 기조가 차기 집행부에서도 이어질지, 아니면 대화파 집행부가 등장할지 관심이 쏠린다.
현재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대위원장, 김택우 전국광역시도의사협의회장,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 주수호 전 의협 회장, 최안나 의협 대변인(이상 이름 가나다순) 등 5명이 이미 출마 선언을 하고 대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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