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대장주 엔비디아가 시장 예상을 웃도는 3분기 실적을 기록했지만 높아진 기대치에 시간 외 주가가 하락했다. 이에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뚜렷한 온도 차를 보였다. 자사주 매입 효과 등으로 삼성전자는 2%가량 상승했지만 엔비디아와 더 밀접한 협력 관계에 있는 SK하이닉스·한미반도체(042700) 등은 하락 마감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향후 엔비디아의 최신 AI칩 ‘블랙웰’의 성공 여부에 따라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과 주가 흐름도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 대비 1.99% 오른 5만 64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 초반 5만 4000원대까지 하락하기도 했지만 기관이 534억 원어치의 순매수에 나서며 상승 폭을 확대했다. 외국인과 개인은 각각 391억 원, 676억 원 순매도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장중 등락을 거듭하다 1.06% 내린 16만 8800원에 마감했다. 기관과 개인은 사들였지만 외국인이 1201억 원 이상 팔아 치우며 주가를 끌어내렸다. 한미반도체도 1.22% 하락했다. 8월 28일(현지 시간) 엔비디아의 2분기 실적 발표 후 블랙웰 출시 지연에 따른 수익성 우려 등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다음 날 일제히 3~5% 급락한 점을 감안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분석이지만 3분기 호실적에도 상승 동력은 떨어진 셈이다.
20일(현지 시간) 엔비디아는 시장 전망치를 웃도는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350억 8200만 달러, 218억 69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4%, 110% 증가했다. 4분기 예상 매출 역시 375억 달러를 제시해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었다. 하지만 주가는 정규장에서 0.8% 하락한 데 이어 시간 외 거래에서는 2% 이상 떨어졌다. 한때 4%대까지 밀리기도 했다.
이는 분기별 매출 증가 폭이 전년과 비교해 계속 줄어들어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 엔비디아의 전 분기 대비 매출 증가율은 2023년 2분기 88%에서 올 3분기 17%로 줄었다. 여기에 최근 발열 이슈가 나온 최신 AI칩 블랙웰 공급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4분기에 예상보다 더 많은 블랙웰을 공급할 것”이라고 했지만 시장은 아직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금융투자 업계 전문가들은 향후 블랙웰의 성공 여부에 따라 국내 반도체주의 방향도 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SK하이닉스는 4분기부터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인 HBM3E 12단 제품을 납품할 예정이고 삼성전자도 12단 품질 검증(퀄 테스트)을 진행 중이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의 3분기 실적에서 수익성 하락과 중국향 실적 감소 우려가 확대됐다”며 “기대치를 뛰어넘는 성과였으나 (동종 업계에) 스파크를 튈 만큼 충분치 않았다”고 말했다. 고영민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블랙웰과 관련해 최근 불거진 우려도 해소될 수 있는 내용이 공유됐다는 점에서 AI 수요의 펀더멘털은 여전히 공고하다”며 “최근 국내 증시가 외국인 수급 유입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박스권 등락을 보이고 있지만 견조한 펀더멘털과 연말 연초 해외 주요 세트·부품 업체들의 내년도 컨센서스 상향이 핵심 트리거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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