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에서 2400억 원 규모의 해외 부동산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했다. 국민연금에서 발생한 첫 해외 부동산 투자 손실이다. 국민연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액은 약 42조 원에 달한다. EOD 직전인 원금 손실 위험 자산 규모만 최소 수조 원대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의 EOD 발생 규모는 2412억 원이다. 미국 쇼핑몰에 투자한 해외 부동산 펀드 1건에서 EOD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민연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 중 EOD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OD는 투자자(채권자)가 운용사(채무자)에 빌려준 자금을 만기 전에 돌려 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뜻한다. 부동산 투자에서는 통상 공실률 확대에 따라 임대료 수입 감소로 대출 원리금을 미지급하거나 자산가치가 담보인정비율(LTV)의 80~85% 밑으로 하락할 때 투자자가 EOD를 선언한다. 투자자 입장에서 더 이상 손실을 감내할 수 없을 때 EOD가 발생하는데 주식으로 치면 ‘손절매’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해외 부동산 투자 건 중 EOD 발생은 없다고 밝혀왔다. 여타 공제회, 일반 금융기관 대비 우량 자산에 투자해 문제가 없다는 해석도 있었지만 국민연금도 선진국 상업용 부동산 급락 여파를 비껴가지는 못한 것이다. 투자은행(IB) 업계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액 중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자산 규모가 최소 2조 원을 넘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EOD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2018~2019년 국민연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 80%는 미국과 유럽에 편중됐고 절반 가까이가 상업용 부동산으로 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한 펀드 규모는 2조 원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액은 매해 급증해왔다. 2019년 23조 7000억 원(전체 운용 자산 중 3.2%)에서 2023년 41조 8000억 원(4.0%)으로 5년 사이 2배 가까이 급증했다. 2019년부터 해외 부동산 투자가 급격히 증가했는데 펀드 만기가 통상 5~6년인 점을 고려하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만기가 돌아온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해외 부동산 펀드 중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규모만 3조 5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규모는 매해 커져서 2027년에는 한 해만 7조 원이 만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의 정보 공개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연금은 해외 부동산 투자 EOD 현황 자료를 내놓으면서 구체적인 펀드명과 투자 자산을 밝히지 않았다. 앞서 해외 부동산 EOD 현황을 제출했던 7대 공제회(교직원·군인·경찰·소방·지방재정·지방행정·과학기술인)가 구체적인 펀드명과 손실 규모까지 밝힌 것과 대비된다.
국민연금과 함께 3대 연금으로 불리는 사학연금과 공무원연금에서는 올 3월 말 기준 해외 부동산 EOD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사학연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액이 3조 6599억 원(전체 운용 자산 중 14.6%)으로 적지 않은 만큼 EOD 발생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사학연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액은 2019년만 해도 7330억 원(4.0%)에 불과했지만 2023년 3조 4586억 원(14.5%)으로 5년 새 5배 가까이 급증했다. 공무원연금의 경우 올 3월 말 기준 해외 부동산 투자액이 2794억 원(2.9%)으로 여타 연기금 대비 소액인 데다 전체 운용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미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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