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가 국내 의약품 도매 업체 1위인 지오영을 약 2조 원에 인수한다. 지난 1분기까지 조 단위 거래 하나 없던 상황에서 대형 인수합병(M&A)의 물꼬가 트인 것이다. 대기업발 사업 구조조정 속에 대형 매물이 속속 나오고 있는 만큼 이번 딜을 계기로 M&A 시장이 활기를 띨지 주목된다.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MBK파트너스는 지오영 최대주주인 세계 최대 PEF 블랙스톤과 이날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매각 대상은 블랙스톤이 보유한 지오영의 지주사 ‘조선혜지와이홀딩스’ 지분(71.25%)과 이희구 명예회장 지분을 합해 총 77%다. 계약 금액은 1조 9500억 원으로 알려졌다. 조선혜 회장의 지분율은 변동이 없다. 지오영 매각 주관사인 모건스탠리는 올 초 MBK파트너스를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하고 배타적 협상권을 부여했다. 양측은 상반기 중 거래를 최종 마무리한다.
지오영은 조 회장과 이 명예회장이 2002년 설립한 의약품 유통 도매 업체다. 블랙스톤은 2019년 지오영의 지분 가치를 약 1조 900억 원으로 책정해 앵커에쿼티파트너스(PE)로부터 경영권을 인수했다. 조 회장은 2대주주(21.99%)로 남아 지금까지 경영에 관여하고 있다.
당초 조 회장 보유 지분에 대해 함께 매각하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조 회장의 영업력과 네트워크를 계속 활용하는 차원에서 블랙스톤 지분만 정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블랙스톤은 이번에 MBK파트너스에 지오영을 매각해 5년 만에 2배 수익으로 자금을 회수하게 됐다. MBK파트너스는 2020년 약 65억 달러(8조 원)로 결성한 5호 블라인드 펀드의 자금과 인수금융 대출 등을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약국의 80%를 거래처로 확보하고 있는 지오영은 펜데믹 시기에 공적 마스크 유통을 통해 이름을 크게 알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오영의 지난해 매출은 별도 기준 3조 63억 원으로 전년(2조 8296억 원) 대비 5.1%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672억 원을 기록해 2022년 602억 원보다 11.7% 늘었다. 2020년 매출 2조 원대에 진입한 뒤 3년 만에 3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것이다. 당기순이익도 2022년 544억 원에서 2023년 598억 원으로 증가했다.
지오영은 수익률이 낮은 의약품 유통 사업의 한계를 넘기 위해 병원 구매 대행과 물류 서비스 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 자체 물류센터를 구축하고 제3자 물류 위·수탁 사업까지 새 먹거리로 키우고 나섰다.
특히 지난달에는 삼성바이오에피스와 계약을 체결하며 바이오시밀러 유통에도 나섰다. 지오영은 또 생물학적 제제, 의료기기, 동물 의약품 등으로 물류 보관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병원과 약국 등이 관리하는 환자들에게 종합 헬스케어 정보기술(IT)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업에도 참여했다.
MBK파트너스는 이런 신사업을 통해 지오영의 체급을 더 키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MBK파트너스는 헬스케어 업종에 주목해 지난해 구강 스캐너 솔루션 업체 메디트(2조 4000억 원)와 임플란트 업체 오스템임플란트(2조 5000억 원)를 연달아 인수했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은 이달 1일 투자자들에게 보낸 연례서한을 통해 이들 사례를 “설립자의 승계 사안이면서 사이즈가 큰 기업의 매각 범주”로 꼽았다. 지오영 역시 이런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MBK파트너스는 메디트와 오스템임플란트를 합병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M&A 시장 분위기도 조금씩 달아오르는 양상이다. 지난 1분기만 해도 고금리 기조 속 밸류에이션에 대한 눈높이 차이로 딜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촤근에는 주식매매계약(SPA)를 맺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맥쿼리자산운용은 국내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인 제뉴원사이언스를 IMM프라이빗에쿼티(IMM PE)로부터 7000억 중후반대에 품었다. 홍콩계 PEF 운용사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는 8500억 원을 제시해 SK렌터카의 새 주인으로 낙점됐고 스틱인베스트먼트는 텍사스퍼시픽그룹(TPG)으로부터 고급 바닥재 회사 녹수의 경영권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또 에코비트, 아시아나 화물사업부, 롯데손해보험, 여기어때 등이 새 주인 찾기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시장에서는 SK·롯데·신세계 등 국내 주요 그룹의 포트폴리오 조정 작업이 마무리되면 카브아웃(분할사업부 인수) 딜이 속속 나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앞서 CJ제일제당은 한때 효자 노릇을 했던 사료 부문 자회사 CJ피드앤케어 매각을 재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국내 주요 PE들이 조성한 블라인드펀드에는 아직 소진되지 않은 드라이파우더 실탄이 넉넉해 PEF 간 주고받는 ‘세컨더리 딜’도 흥행이 예상된다. 삼성·LG·엔씨소프트·크래프톤 등 주요 기업들도 언제든 인수전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보이고 있다. 정경수 삼일PWC M&A센터장은 “지난해부터 추세를 보면 계약 기준이든 완료든 하반기부터 시장이 더 살아나는 분위기”라며 “경기 침체 국면과 업종별 전망이 상이해 아직 2021~2022년 호황까지 가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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