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에 대한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격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인협회가 25일 발표한 ‘주주행동주의 부상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은 한국 기업 수는 77개사에 달해 2019년의 8개사에 비해 9.6배 급증했다. 조사 대상 23개국 가운데 미국(550개사), 일본(103개사)에 이어 세계 3위다. 행동주의 펀드는 특정 기업의 지분을 매입한 뒤 경영진에 요구 사항을 전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경영권 흔들기 등 적대적인 공세를 펼친다. 겉으로는 불투명한 지배 구조 개선, 주주 가치 제고 등을 내세우지만 단기 고수익을 노리는 ‘치고 빠지기’나 ‘기업 사냥꾼’식 행태를 보이는 행동주의 펀드들이 허다하다.
투기성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은 기업 경영에 악영향을 미친다. 한경협이 2019년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은 미국 등 해외 기업 48개사의 공격 기간 전후 3년의 경영 성과를 분석한 결과 설비투자가 공격이 진행된 해에는 전년 대비 2.4%, 이듬해에는 23.8% 각각 감소했다. 올 들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주주 환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에 편승한 행동주의 펀드의 공습이 거세지고 있다. 최근 영국계 시티오브런던 등 5개 행동주의 펀드가 연합해 삼성물산에 과도한 주주 환원을 요구했다가 표 대결에서 패한 일도 있었다. 이들 펀드처럼 늑대가 무리를 지어 먹잇감을 사냥하듯 펀드들이 뭉쳐 한 기업을 공격하는 ‘울프팩’ 전략이 확산되고 있다.
국내 기업에 대한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격 수위는 높아지는데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기업들의 수단은 많지 않다. 자사주 매입 외에 별다른 방어 도구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상당수 상장사는 경영권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우리 기업들이 투기적 행동주의 펀드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절실하다. 경영권 보유 주주의 주식에 의결권을 더 많이 부여하는 ‘차등의결권’, 경영권 분쟁 때 대주주가 싼 가격에 신주를 살 수 있는 ‘포이즌필’ 등의 기업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을 서둘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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