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지급안이 확정된 후 완성차 업계의 전기차 할인 경쟁이 뜨겁다. 국비보조금에 이어 지방자치단체 보조금도 속속 결정되면서 소비자들의 관심 또한 보조금이 적용되는 차종과 할인 폭에 집중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현대차의 아이오닉 5를 어느 지역에서 등록하는 것이 가장 저렴한지에 대한 정보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번 보조금 지급안은 기존 소비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바로 배터리 재활용 촉진과 배터리 기술 개발 유도다. 정부는 올해부터 전기차 보조금 산정 기준에 배터리 재활용 가치를 처음 도입했다. 배터리 1㎏당 포함하고 있는 유가금속 가치에 따라 총 5단계로 나눠 보조금을 차등 지급한다.
재활용 가치 기준을 신설한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국내 전기차 신규 등록 대수는 16만 2593대다. 전체 자동차 신규 등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3%로 대중화 초입 단계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유럽·미국도 대중화 단계 또는 대중화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전기차 비중 확대로 배터리의 사용 후 처리 문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30년 국내에서 재활용될 폐배터리의 양은 1만 8000톤(4만 개)에 달한다. 폐배터리가 도시 광산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미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앞으로 폐배터리가 급속도로 증가할 것을 대비해 배터리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5% 수준에 불과한 2차전지 수거·재활용률을 90%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배터리 신품 제조 시 일정 비율을 재생원료로 사용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핵심 광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재활용에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이번 보조금 지급안에서 배터리를 ‘순환 자원’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사용후배터리에서 핵심 광물 회수를 촉진하기 위해 최대 30일인 폐기물 보관·처리 기한을 폐배터리의 경우 최대 180일로 늘린 것이 대표적이다.
배터리 에너지밀도 기준도 주목해 볼만 하다. 에너지밀도에 따른 보조금 차등화는 각 업체들의 배터리 기술 개발을 유도해 전기차 경쟁력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전기차 소비자의 편익 증대로도 이어진다.
최근 전기차 시장은 얼리어답터 성향을 가진 소비자들의 구매가 끝나면서 진짜 경쟁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진정한 대중화 단계로 진입하려면 자원 재순환 체제 구축과 함께 내연기관차를 넘어서는 상품과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회사들이 새 기준에 대응해 선제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에 나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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