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 주변국의 분쟁이 잦아지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분쟁은 발생한지 100일 이상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 이 사태가 세계 에너지 시장의 수요와 공급 균형을 크게 악화시키지는 않았다. 현재 브렌트유의 1년 평균 가격은 비교적 변동폭이 크지 않은 편이다.
그 배경에는 크게 2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세계적인 고금리 기조와 주요 선진국들의 긴축적인 재정 정책으로 글로벌 에너지 수요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점이다. 두 번째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유가 상승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고 더 이상의 감산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며 미국의 에너지 생산량은 그것을 상쇄할 만큼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미국은 중동의 산유국들과 달리 지리적으로 봉쇄나 수송 중단 같은 위험 요인도 없다.
그러나 홍해 지역 전반으로 지정학적 위험이 확대되고 있어 아직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지속적으로 이 지역에서 무인기, 미사일, 해군 작전 및 비밀 첩보 활동들을 통해 자신들의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대립관계에서 한쪽의 기습적인 행동은 다시금 상대편의 보복을 촉발시킬 가능성을 높인다. 실제 최근에 케르만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한 이후 주변에서 이에 대응하는 연쇄작용으로 분쟁의 빈도와 범위가 광범위하게 넓어진 바 있다.
이런 상황은 특히 홍해의 해운 운송 항로를 제한하고 인도양 지역에 대규모 보안 조치를 강화하게 만든다. 그로 인해 이미 유럽에서 아시아와 중동지역을 오가는 해운 및 화물의 상당 부분이 홍해를 피해 아프리카 최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멀고먼 우회 항로를 택하고 있다. 이는 당연히 운송 비용을 증가시킬 수밖에 없고 상황이 지속된다면 10~11개월의 시차를 두고 인플레이션 상승에 반영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연구에 따르면, 운송 비용이 50% 증가하는 것은 그로부터 4분기 내에 글로벌 인플레이션 0.2%포인트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거시경제 여건에도 주목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와 달리 대부분의 경제 주체들은 더 이상 대규모 재정 부양책을 펼치지 않고 있다. 주요 중앙은행들은 국채를 대량 매입하거나 경기부양을 촉진하기 위해 돈을 풀지 않는다. 사실 완전히 그 반대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 발생하는 홍해 해운항로 중단이 장기화된다면 향후 몇 달 동안의 인플레이션 둔화 작업을 방해할 수 있으며 이러한 리스크는 아직 가격에 반영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중요한 것은 홍해 노선의 중단 기간과 규모에 달려 있다. 그러나 지정학적 전문가가 아니라도 이스라엘과 하마스 또는 이란 등의 갈등과 중동지역의 분쟁은 완전히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은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유럽-중동-아시아에서 인도양 해운 항로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인플레이션 위험이 더 높은 편이다. 다행히 이와 대조적으로 태평양을 경유하는 미국과 아시아 대부분 지역의 무역은 민감도가 비교적 낮다. 하지만 반대편에서 아프리카 남단으로 돌아가는 긴 항로로 컨테이너 부족이 장기화되면 다른 지역의 가격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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