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어떤 일을 하는 부처일까. 정부조직법 제 29조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은 과학기술정책의 수립·총괄·조정·평가, 과학기술의 연구개발·협력·진흥, 과학기술인력 양성, 원자력 연구·개발·생산·이용, 국가정보화 기획·정보보호·정보문화, 방송·통신의 융합·진흥 및 전파관리, 정보통신산업, 우편·우편환 및 우편대체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즉 과학기술과 통신정책 기획 및 진흥이 이 부처의 핵심 기능인 셈이다. 다만 최근 과기정통부의 행보를 보면 정부조직법이 규정해 놓은 이 같은 업무를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는 지 의문이 든다.
우선 과학기술 분야를 보자. 올해 연구개발(R&D) 예산은 전년 대비 4조6000억원 삭감됐다. 이 같은 예산 삭감은 대통령실의 의중이 작용한 결과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에 대해 “세계 최고 R&D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군살을 빼고 근육을 붙여가자는 취지”라며 R&D 예산 삭감의 당위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R&D 진흥을 담당해야 할 부처가 5조원에 육박하는 예산 삭감안을 옹호하며, 당연히 과학계의 반발이 제기됐다.
이 같은 반발은 이달부터 본격화 되는 모습이다. 한국대학교수협의회 측은 이달 “과기 R&D 예산의 14.7%인 4조 6000억원 삭감으로 과기 전문인력 불만 팽배 및 MZ세대 신진 인력 감축으로 직접 타격이 발생했다”며 조성경 과기정통부 1차관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한국의 핵심 먹거리인 반도체 분야에서도 과기정통부의 역할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이종호 장관이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 반도체 전문가라는 점에서 정책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실제 이달 15일 진행된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방안’ 브리핑에서는 이 장관 대비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발언 비중이 훨씬 높았다. 해당 행사 진행은 1급 공무원인 산업부 대변인이 했다.
그렇다면 정보통신분야는 어떨까. LTE의 20배 속도를 낸다던 5G는 느린 속도 때문에 과장광고 혐의를 받고 있으며, 이통사의 이익만 늘려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여전하다.
현 정부 들어 공개된 과기정통부의 정보통신 분야 정책 중 ‘3만원대 5G 요금 출시’ 정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이 같이 요란하게 홍보한 3만원대 5G 요금제는 아직 시장에 공개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같은 정책에 따른 3만원대 5G요금 설계 작업은 개별 이통사 몫이다.
28GHz 주파수 대역을 활용한 이른바 ‘제4이통’ 출범 정책 또한 해당 주파수 대역을 지원하는 스마트폰이 국내에 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통신요금 인하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점을 보여주기 위한 ‘보여주기식 정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정책의 홍보 대상은 국민이 아닌 대통령실이라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는 19세기 초반까지 유럽에 존재했던 ‘신성로마제국’에 대해 “‘신성’하지도 ‘로마’에 있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제국’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지역에 자리했던 신성로마제국이 이름만 길고 거창했을 뿐 제대로 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점을 비꼰 표현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또한 18개 정부 부처 중 가장 긴 이름을 갖고 있지만 신성로마제국 마냥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정책 모두 어중간한 모습이다. 이 같은 과기정통부의 입지는 향후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실이 과학기술수석 자리를 신설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지난달 개각에서 과기정통부 장관이 유임됐지만, 과기정통부 업무 수행 능력이 합격점을 받아 유임된 것은 아니다"라며 “이름만 거창했던 ‘미래창조과학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정책 수립과 홍보에 보다 역량을 쏟아부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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