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발전 자회사를 통해 수조 원대의 중간배당을 받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발전 자회사 중 한 곳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중간배당을 위한 정관 개정안을 이사회에 상정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11일 재논의하기로 했다.
8일 발전 업계 등에 따르면 한전은 발전 자회사 6곳에 연말까지 중간배당을 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간배당액은 최소 1조 원에서 최대 4조 원으로 논의 중이다. 한전이 발전 자회사로부터 중간배당을 받겠다고 나선 것은 2001년 전력 구조 개편 이래 처음이다.
한전이 초유의 중간배당을 추진하는 것은 누적 적자로 내년 한전채 발행 한도(자본금+적립금 합계의 5배)가 축소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2021년 이후 역마진 구조가 심해지면서 전기를 밑지고 팔고 있는 한전은 올해 3분기까지 45조 원에 이르는 누적 영업적자를 기록 중이다. 올해 한전채 발행 한도는 지난해 한전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약 20조 9200억 원)의 5배인 104조 6000억 원이다.
문제는 요금 인상에도 올해 6조 원의 순손실이 예상되면서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가 줄어 한전채 발행 한도도 덩달아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내년 예상 발행 한도는 75조 원가량인데 10월 말 한전채 발행 잔액만 79조 6000억 원에 달한다. 내년에 한전채를 추가 발행하기는커녕 외려 기존 한전채를 갚아야 하는 처지인 셈이다.
한전은 이에 발전 자회사들에 실제 배당금 입금은 내년에 하더라도 회계상 배당 입금 처리는 연말까지 마쳐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간배당을 반영해 자본금을 가능한 한 부풀려놓으려는 전략에서다.
한전이 발전 자회사에 긴급구조(SOS)를 요청했지만 발전 자회사 역시 재무구조가 녹록지 않다. 한수원은 올해 3분기까지 1600억 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그나마 영업흑자를 낸 나머지 5개 발전 자회사조차 3분기 누적 흑자 폭이 남동발전 3576억 원, 중부발전 4101억 원, 서부발전 2800억 원, 동서발전 3402억 원, 남부발전 2135억 원 등에 그친다.
전례 없는 중간배당 요구에 발전 자회사 이사진들도 고민에 빠졌다. 발전 자회사의 한 관계자는 “한전의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한전이 요구하는 수준의 배당 여력이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수원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중간배당을 위한 정관 개정안을 논의에 부쳤으나 영업적자 상태에서 중간배당을 하는 데 따른 부담을 토로하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상법상 연간 누적 영업이익을 넘어서는 중간배당은 배임 가능성이 있다는 측면도 자회사의 결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한수원을 비롯해 발전 자회사들은 14일까지 줄줄이 이사회가 잡혀 있지만 서로 눈치만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으로서는 발전 자회사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내년 4월 총선을 고려하면 당분간 전기요금 추가 인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정치 일정도 있지만 최소한 요금 인상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3분기 전기요금을) 대규모 사업자 위주로 인상해 일단 급한 불을 껐다”며 “경제 원리에 따라 올려나가되 전반적 물가 수준, 국민 소득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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