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들은 부정적인 경제 전망을 할 때 보통 ‘안개’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런데 내년 경제 전망 보고서에는 안개가 아니라 아예 ‘비가 온다’고 써야 할 판입니다.”
최근 만난 한 민간 경제연구소 연구원에게 내년 경제 전망을 묻자 깊은 한숨과 함께 이런 답이 돌아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고금리·고물가 장기화, 극심한 경기 침체, 멈추지 않는 가계부채 증가 등 무엇 하나 우리 경제에 긍정적 변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정부 관련 기관들은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을 아직 2%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민간에서는 이미 1%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며 “매일 경제지표와 산업수치를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공포스럽기까지 하다”고 전했다.
정부는 올해 경제 전망을 ‘상저하고’(上低下高)로 내다봤고, 최근에도 이 같은 경기 전망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상저하저(上低下低)’에 가깝다. 지난달 30일 정부가 발표한 10월 경제지표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감소하는 ‘트리플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산업 활동을 보여주는 3대 지표가 모두 감소한 것은 올 7월 이후 석 달 만이다. 10월 전산업생산지수는 111.1로 전월보다 1.6% 내렸다. 2020년 4월 이후 3년 6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하락이다. 같은 날 한국은행은 내년 실질 GDP 성장률을 기존 2.2%에서 2.1%로 낮췄다. 올 2월 2.4%로 전망한 후 5월과 8월에 낮춘 데 이어 다시 하향 조정한 것이다. 반면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기존 2.4%에서 2.6%로 높였다. 경제 현실은 “어렵다”고 말하는데, “괜찮다”고 하는 정부 경제팀의 모습에서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실패 과정이 겹쳐 보이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실물 경기는 이미 최악이다. 경기에 가장 민감한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들은 벌써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 10월 말 기준 법인 파산 신청은 1363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66.83% 급증했다. 역대 최대다. 한 달 전인 9월에는 파산 신청 건수가 회생 신청 건수를 넘어서는 ‘데드크로스’가 사상 처음 발생했다. 어려운 사업이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보다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절망감이 시장에 팽배하다.
연초부터 ‘3고 현상(고물가·고금리·고환율)’에 시달려온 소상공인 업계는 더 심각하다.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8월 말 기준 소상공인 폐업 점포 철거 지원 사업 신청 건수는 2만 451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배 많았다. 이미 지난해 전체 신청 건수(2만 4542건)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대로라면 올해 전체로는 3만 건을 훌쩍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내년이면 윤석열 정부는 집권 3년 차를 맞는다. 5년 전체 임기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다. 그동안은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해도 정치인이 아닌 ‘검사 출신’ 대통령인 만큼 국민들이 기다려줬고 과거 정부 탓을 해도 ‘정권 교체’에 성공한 정권이라는 점을 들어 참아줬다. 하지만 3년 차부터는 ‘윤석열 정부’의 성과로만 오롯이 평가받는다.
가장 큰 잣대는 바로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다.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제는 경제에 ‘올인’해야 할 때다. 때마침 대통령실은 수석비서관을 전원 교체하며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이르면 이번 주에 개각도 단행한다고 한다. 추 경제부총리 후임으로는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유력하다고 전해진다. 예상대로 개각이 완료되면 윤석열 정부의 2기 새 경제 라인업은 이관섭 정책실장, 박춘섭 경제수석, 최상목 경제부총리로 완성된다.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경제 회복이다. 팍팍해진 국민 살림을 회복시키고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동력을 키워내는 일에 모든 능력을 집중해야 한다. 현재 정부의 재정 운영 기조와 내년 4월 총선 일정을 감안하면 정책 운영의 공간이 좁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를 풀수록 보상은 클 것이다. 이번만은 숙제를 ‘열심히 풀기’보다 ‘잘 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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