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003490)과 아시아나항공(020560)의 기업결합이 8부 능선을 넘었지만 나머지 2부 능선은 더 험준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나 이사회가 2일 화물 사업 매각을 진통 끝에 통과시키면서 공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로 넘어갔다. 하지만 실제 화물 사업을 인수할 항공사가 나와야 하는 ‘전(錢)의 전쟁’이 시작되고 마지막 난관인 미국과 일본 경쟁 당국의 최종 승인도 남았다.
EC와의 협상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한국~유럽 화물 지배력 완화였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대한항공은 아시아나 화물기 매각 등을 EU 경쟁 당국에 제안했지만 EC는 이 방안을 모두 거절하며 결국 아시아나 화물 사업을 파는 데까지 왔다. 이마저도 불완전한 시정 조치안이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가운데 아시아나 화물 사업을 인수할 기업을 찾아 거래 종결까지 완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수 의향 기업이 나타나더라도 EC가 이를 수용할지가 관건이다. 대한항공은 1월 말께 EC의 승인 여부가 날 것으로 보고 있다. 1월까지 화물 사업을 인수할 기업을 찾아야 하는 큰 과제가 생긴 셈이다.
미국과 일본 경쟁 당국의 승인도 남았다. 쉽게 처리될 것으로 예상되던 미국의 경우 5월 한 외신에서 “미국 법무부가 양사 합병을 막기 위해 소송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양사 합병 법인이 미국과 한국 간 여객과 화물 운송 경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 미 법무부는 올 3월 미국의 제트블루와 스피릿의 기업결합을 저지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이에 대해 “미국 법무부와의 대면 만남에서 당사와 지속 논의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받은 상황”이라고 했다.
대한항공은 현재 미국 당국을 상대로 양사 기업결합이 미국 항공 시장 내 경쟁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한미 노선은 한국인 승객이 대다수라는 점 △한국 공정위의 시정 조치가 이미 내려진 점 등이 기본 주장이다. 뉴욕·로스앤젤레스(LA)·샌프란시스코 등 양사의 북미 주요 노선에 신규 항공사들이 꾸준히 진입하고 있다는 것도 대한항공의 주장이다. 국내 LCC인 에어프레미아는 실제 미국 뉴욕 노선에 취항하고 있다.
미국 경쟁 당국도 화물 문제를 지적한다. 한국과 미국 기업들은 항공 화물기를 통해 반도체와 같은 첨단 제품을 실어나른다. 미 당국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기업결합이 미국 정부가 중요하게 여기는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제품에 대한 화물 운송 가격을 인상시킬 우려가 있다고 대한항공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 화물 사업부가 제3의 기업에 인수되면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일본 경쟁 당국은 상대적으로 쉽게 양사 합병을 승인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일본 노선은 이미 국내 LCC들이 대거 진입해 경쟁이 활발하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일본 경쟁 당국과의 시정 조치안 협의가 완료되는 대로 정식 신고서를 제출한 후 내년 초 심사 종결이 목표”라고 말했다.
한편 EC가 요구한 시정 조치안이 최종 제출됨에 따라 아시아나의 자금 수혈에도 숨통이 트였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를 인수하면서 계약금 3000억 원, 중도금 4000억 원과 최종 인수 결정 시 8000억 원을 투입한다. 현재까지 계약금과 중도금이 묶여 있었는데 시정 조치안이 제출되며 아시아나는 투자금을 쓸 수 있게 됐다. EC 승인이 나지 않더라도 최종적으로 아시아나는 1500억 원을 가져가는 구조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아시아나 화물 사업 매각은 고용 승계와 유지를 조건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양사 간 자금 지원 합의 체결로 아시아나에 유동성 지원이 이뤄져 아시아나의 경영상 어려움도 다소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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