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참여정부 시절부터 최상위 국정과제로 추진돼 온 지역균형발전을 대대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낙후지역 개발에 초점을 두고 규모가 작을수록 보조금을 많이 주는 기존 방식을 중단하고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권역별 거점도시를 키워 ‘메가서울’의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층에게 좋은 일자리와 함께 문화·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지방 대도시가 있어야 수도권 집중을 막고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는 과감한 목소리를 냈다.
2일 한국은행 조사국이 발표한 ‘지역간 인구이동과 지역경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국토 11.8% 수도권에 인구 50.6%가 집중돼 있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국 중 수도권 비중이 가장 높다. 한은 관계자는 “수십 년 동안 균형발전 정책에도 수도권 집중이 멈추지 않는 현 상황을 보면 현 정책 방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수도권 집중 현상이 나타나는 대부분 요인은 청년층 이동이다. 2015~2021년 수도권 인구증가의 78.5%가 청년 유입으로 설명된다. 반대로 호남, 대구·경북, 동남권 인구 감소의 대부분은 청년 유출이다.
청년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이유는 기대소득과 함께 문화·의료 등 서비스의 지역 간 격차가 커졌기 때문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월평균 실질임금 격차는 2015년 34만 원에서 2021년 53만 원으로 확대됐다. 1000명당 의사 수도 0.31명에서 0.45명으로 커지는 등 대부분 분야에서 서울 일극(一極) 체제가 공고해지고 있다. 그 결과 청년 유출지역에서 출산이 급감할 뿐만 아니라 수도권에서 이를 상쇄하지 못해 전국 출산이 감소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한은 관계자는 “국가 내 수도권 경쟁 우위는 당연한 현상이지만 이외 다른 대도시가 어느 정도 경쟁력을 유지한다면 청년이 수도로만 집중되진 않을 것”이라며 “우리나라 대도시들과 서울의 격차는 경제, 문화, 의료 등 대부분 분야에서 2015년 이후 확대되면서 주변 인구를 끌어들여야 할 대도시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은이 제시한 대안은 비수도권에서 양질의 일자리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거점 대도시를 중심으로 산업 규모와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대도시보다 도(道)지역에서 이동 성향이 훨씬 강하고, 인구 감소 시대에 비수도권 중소도시가 크게 성장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비수도권의 방사형 도로망 등을 감안하면 거점도시 위주의 성장 전략이 효율적이고 실현가능한 균형발전 패러다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을 사례로 들면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등 도쿄 대안이 될 수 있는 지역 대도시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과거 지역균형발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도시가 아닌 지역에 혁신도시를 만들고 공공기관을 이전했는데 이런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한국전력공사는 나주, 국민연금공단은 전주, 한국주택토지공사(LH)는 진주 등에 분산돼 있다. 한은 관계자는 “앞으로 공공기관 이전은 거점도시에 중점을 두는 것이 낫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은이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은 줄고 거점도시로 이동이 크게 늘어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30년 후인 2053년 수도권 인구 비중은 49.2%로 절반 아래로 하락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지역 간 출산율 차이에 따른 효과로 전국 인구가 약 50만 명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했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거점도시들이 중심지 기능을 점차 회복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주요 사회간접자본(SOC), 문화·의료시설, 공공기관 이전 등을 거점도시에 집중하고 거점도시와 인접지역을 통합 관리하는 광역기구 활성화와 함께 권역 내 이동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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