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N이 결제 자회사 페이코에 최대 1000억 원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외형을 꾸준히 키워온 페이코지만 네이버, 카카오 등 경쟁사와의 경쟁 속에 마케팅 비용 출혈이 지속됐고 손실 규모도 계속 늘어난 탓이다. 페이코는 추후 자금 수혈을 통해 당장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고 경쟁자들의 영향력이 적은 기업간거래(B2B) 영역에 힘을 쏟을 것으로 전망된다.
NHN은 지난 30일 결제 자회사 페이코에 안정적인 운영 자금을 대기 위해 향후 최대 1000억 원을 대여할 수 있다고 공시했다. NHN은 “1000억 원은 이사회 결의한 한도”라며 “추후 시장 및 사업 운영 상황에 따라 일시적인 자금 부족 상황이 발생할 경우 한도 내에서 실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지속적으로 당기순손실을 기록해 온 페이코가 지속적으로 결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조처로 풀이된다. 지난해 페이코는 2년 전 대비 48.8% 늘어난 연간 매출 약 520억 원을 기록하는 등 꾸준한 외형 성장을 이뤘지만 당기순손실 규모는 되레 늘고 있다. 같은 기간 당기순손실은 약 340억 원에서 약 461억 원으로 불고 부채도 이 기간 두배 이상 증가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이번 결정이 기존 네이버·카카오·페이코 구도로 이어져 온 ‘페이전쟁’이 ‘네카오’ 2강으로 재편된 현 구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시선도 있다. 간편 결제 시장을 걸고 시작된 이들의 경쟁은 지난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NHN은 NHN엔터테인먼트(게임)와 네이버(검색)으로 분할된다. 네이버는 2009년 네이버 체크아웃이라는 이름으로 일찍이 결제 사업을 시작했고, NHN은 2017년 페이코를 분사해 간편결제 사업을 본격화했다. 2010년 출시된 카카오톡으로 모인 이용자들을 자산으로 2014년 카카오페이 서비스도 첫발을 뗐다.
열세에 놓인 지금과 달리 경쟁 초반에는 페이코도 기세에서 밀리지 않았다. 법인 출범 후 약 1년 반 만에 누적 결제액 1조 원을 돌파했고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와 달리 특정 플랫폼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장점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2017년 초 제휴 금융기관도 20개로 국내 최대 규모에 달했다. 당시 국내 페이 업계 수위 사업자 네이버, 카카오와도 한끗 차이였다.
하지만 미세했던 격차는 지속적으로 벌어졌다. 페이코는 이후 플랫폼 경쟁력과 빠른 결제처 확보로 승부를 건 네카오 전략에 시장을 조금씩 빼앗겼다. 네이버는 쇼핑, 예약, 웹툰 등 연계된 자사 서비스와의 시너지에 네이버멤버쉽 등 구독 모델로 급성장했고, 카카오도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한 송금 서비스와 빠른 온라인 결제처 확보로 페이코와의 격차를 벌려나갔다.
마땅한 소구점이 없었던 페이코는 대학 캠퍼스 등 플랫폼 기업들의 영향력이 덜한 영역을 노리는 한편 부족한 존재감을 쿠폰·포인트 공세로 메우며 출혈 경쟁을 이어왔지만 경쟁자들의 몫을 빼앗는데 까지는 역부족이었다. 페이코 관계자는 “네이버, 카카오의 막강한 플랫폼을 뚫고 페이코가 이용자와 매장 수를 확보하려면 결국 포인트나 쿠폰을 지급하는 판촉 비용이 들 수밖에 없는데 이 부분이 예상만큼 효과를 보지는 못하다 보니 손실이 악화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페이코는 기업소비자간거래(B2C) 영역에 집중해왔던 데서 방향을 틀어 기업간거래(B2B) 사업에 힘을 주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식권, 복지포인트 사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엿보고 있다. 페이코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B2B를 전면에 세우고 핵심 사업 위주로 서비스를 개편했다. 이에 인력도 일부도 감축했다. 이러한 효과가 반영돼 페이코 상반기 누적 영업적자가 전년 동기 대비 64% 가량 개선됐다. 정우진 NHN 대표는 지난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올해는 핵심 사업별 매출 향상과 효율적인 비용 집행에 집중 중”이라며 “올해에는 페이코의 영업손실 규모를 전년 대비 50% 이하로 줄여 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말했다.
다만 자금 대여를 실행할 NHN의 상황도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NHN은 전년 대비 60% 가까이 떨어진 영업이익 407억 원을 기록했으며 당기순손실 46억 원으로 적자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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