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2월 가동된 구미국가산업단지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기업이 입주해 국내 전자 산업의 발전을 선도하고 지역경제의 중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주요 생산라인을 해외나 수도권으로 이전하면서 공동화 현상이 나타났다.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납품하던 중소 제조기업들 중 구미국가산업단지에 남은 곳들은 경영난에 직면했다. 일부 기업들은 납품 사업이 아닌 자체 사업을 고민했지만 곧 한계에 부딪혔다. 대기업의 협력사로서 뛰어난 부품 개발 기술력을 갖고 있지만 완제품을 생산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업간거래(B2B) 사업만 해왔기 때문에 자체 브랜드가 없어 완제품을 출시해도 홍보·마케팅이 여의치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디자인진흥원은 대기업이 떠난 산단을 지키고 있는 중소 제조기업의 홀로서기를 위해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경북 구미에 위치한 ‘경북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센터’는 이같은 지역적 특성 때문에 다른 센터들에 비해 5G 기반 전자융합 분야를 특화했다. 경북센터의 주요 목표가 중소 제조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전자 관련 뿌리 기술을 활용해 이들만의 완제품을 만들 수 있게 돕는 것인 만큼 5G와 사물인터넷(IoT)를 비롯해 모바일, 통신, 반도체 분야와 연계된 디자인 컨설팅을 활발하게 제공하고 있다. 강승영 경북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센터 선임연구원은 “C타입 생산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업체부터 스마트태그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업까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며 “대기업의 하청을 받던 중소 제조기업들이 산업단지를 떠나지 않고 성장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센터는 중소 제조기업의 디자인적 이해를 높이기 위한 특별한 공간도 마련했다. 경북센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로비에는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을 통해 개발한 제품들의 발전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강 선임연구원은 “폴대만 생산하던 한 업체는 자사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센터를 방문했다”며 “컨설팅을 비롯한 다양한 지원을 통해 폴대 제작 기술을 활용한 캠핑 용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전시를 통해 중소 제조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원천 기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완제품으로 재탄생되는지 표현해 영감을 얻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경북센터 2층에는 제품 생산에 필요한 다양한 소재를 모아둔 ‘디자인 소재 은행’이 마련되어 있다.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MCX(Material ConneXion)’에서 받은 100여 개의 소재 샘플을 전시한다. 소재 은행을 방문한 제조기업 관계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소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제조 과정에서 필요한 소재에 대한 상담도 받을 수 있다.
경북센터는 국립 금오공과대학교를 중심으로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금오공과대 벤처창업관에 입주한 초기 스타트업들은 디자인주도 제조혁신 사업을 통해 제품 디자인 개선 뿐만 아니라 제조 및 양산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2021년 설립된 유알아이는 이륜자동차 안전용품을 개발·생산한다. 지난해 경북센터의 컨설팅을 받고 스마트폰 거치대 개발에 성공했다. 이권형 유알아이 대표는 “제품 개발 초기에 5000만 원이라는 큰 비용을 들여 모형을 만들었지만 생각대로 나오질 않았다”며 “스마트폰이 거치대에 잘 붙어있어야 하는데 계속 떨어졌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우연히 디자인주도 제조혁신 사업 공문을 보고 바로 센터를 방문해 상담을 받고 지원한 결과 디자인 전문기업의 도움을 받아 제품 디자인부터 양산까지 성공했다”고 말했다. 유알아이의 스마트폰 거치대는 올 5월부터 시중에 판매되고 있다. 이 대표는 “중국산이 점령한 이륜자동차 스마트폰 거치대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힘 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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