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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노벨상, 열린 사회와 천재들의 합창

손철 투자증권부장

노벨경제학상 등 유독 美서 많이 배출

세계 최고의 석학들 모여있는 덕인듯

열린사회서 학자들 편하게 협업하는

자유로운 교육환경이 지식강국의 길





클로디아 골딘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9일 여성으로는 세 번째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발표를 끝으로 올해 노벨상 시즌이 막을 내렸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거부가 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으로 제정된 이 상은 올해 123회를 맞았고 노벨 경제학상은 1969년 추가돼 55번째였다. 매년 10월이 오면 전 세계 학계의 이목이 스톡홀름에 쏠리고 한국의 관심도 어느 나라보다 높지만 올해 역시 과학과 경제·문학상 등에서 한국인 수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것이 여전히 유일하다.

경제지의 뉴욕 특파원들은 각 분야 ‘세계 최고의 상’으로 이견이 없는 노벨상, 그 중에서도 경제학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미국 동부 시간으로 아침 일찍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타전된 다음 통상 3~4시간 지나 열리는 수상자 기자회견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전날 잠들기 전 뉴욕의 컬럼비아대나 가까운 뉴저지의 프린스턴대에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바라기도 한다. 차로 2시간 혹은 4시간 걸리는 코네티컷주 뉴헤븐의 예일대나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하버드대·MIT도 나쁘지 않다. 이들 대학의 교수가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뉴스를 확인하는 즉시 핸들을 잡으면 기자회견에 늦지 않게 도착해 평소 만나기 힘든 석학의 수상 소감과 함께 한국 경제와 관련된 이슈를 놓고도 통찰력과 해법을 기대할 수 있다.

미국 서부의 명문 스탠퍼드대나 UCLA·UC버클리 등에서 수상자가 나오면 안타깝지만 비행기로도 회견 시간에 맞출 수 없어 일찍 포기하고 현지 외신이나 학교 측이 제공하는 동영상에 의존한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고향으로 노벨 경제학상 단골인 시카고대다. 뉴욕에서 가장 빠른 시카고행 비행기 표를 구하기만 하면 수상자를 만날 수 있지만 만석이거나 자칫 공항 가는 길이 막히면 낙종을 면치 못한다.

뉴욕 특파원으로 일한 3년 동안 한 해는 하버드와 MIT에서 수상자가 나왔고 마지막 해는 폴 로머 뉴욕대 교수와 월리엄 노드하우스 예일대 교수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아 어렵지 않게 이들을 인터뷰했다. 하지만 2017년 행동 경제학의 대가인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 교수가 수상한 당시에는 집 주변 공항 다섯 곳의 여객기 스케줄을 물색해 겨우 회견 중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길게 얘기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취재법과 경험은 특파원 선배로부터 받은 생존(?) 노하우들 중 하나인데 처음 들을 때는 불쾌한 의문이 솟구쳤다. 역대 노벨상이든 노벨 경제학상이든 수상자는 미국인이 가장 많지만 그렇다고 해마다 미국에서 나올 것으로 확신하며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느냐는 것이다. 선배는 웃으며 답하지 않았지만 이후 3년간 노벨 경제학상은 모두 미국에서 배출됐다. 주의할 사실은 수상자들이 그렇다고 모두 미국인이거나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권자는 아니라는 점이다.

2016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올리버 하트 하버드대 교수는 영국인이고, 벵트 홀름스트룀 MIT대 교수는 핀란드인이었다. 세계 최고의 경제 석학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미국이어서 노벨상 수상자가 또 나올 확률도 ‘믿을 만한 수준’으로 높았던 것이다.

인류에 공헌할 학문적 성과는 천재 한 사람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연구재단이 내놓은 ‘노벨과학상 수상자 분석’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노벨 과학상 수상자 77명은 평균 37.7세에 핵심 연구를 시작해 69.1세에 상을 받았다. 독보적 개성과 스타일·창의성을 중시하는 문학상과 달리 노벨 과학상과 경제학상은 방대한 연구가 필요해 2~3명의 공동 수상자가 빈번하게 나온다. 하트 교수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의 영광을 동료들에게 돌리며 선후배 학자와 ‘찰스강 산책’이 난제를 해결하게 이끌어줬다는 경험담을 잊을 수 없다.

매년 1월 초 전 세계 주요 경제학자들이 총출동해 열리는 전미경제학회(AEA)의 하이라이트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오찬이다. 연단 위에 20여 명의 살아 있는 경제학 교과서들이 1열 횡대로 밥을 먹고 있는 광경은 보는 것만으로 부러움 그 자체다. 불세출의 학자나 예술가가 나와 노벨상을 품는 꿈도 좋지만 열린 사회에서 많은 학자들이 편하게 협업하는 교육 환경이 진정한 지식 강국으로 도약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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