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참석한 TV 방송 토론에서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정상회의의 성과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내가 A+ 학점을 주겠다고 했더니 야당 출연자 중 한 사람은 마이너스 점수를 주겠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평가를 유보하겠다고 했다. 그들은 한미일 3국의 공약을 국민들이 반대하는 준(準)군사동맹이라고 단정하고 부정적 평가의 이유로 제시했다. 준군사동맹이 절대 아니라는 반론을 펼쳤지만 접점을 모색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발발 1년 전 일본의 침략 여부를 정반대로 보고한 조선통신사들의 엇박자를 연상케 했다. 야당 출연자들의 부정적 평가에도 분명한 것은 한미일 3국이 새로운 차원에서 협력의 제도화를 모색했다는 점이다. 군사 분야뿐만 아니라 상무장관 회담을 비롯해 의료와 여성·서비스 분야까지 합의해 협력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협력을 통해 국익을 확대할 여지가 증가한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정상회의의 A+ 학점이 내년에도 유지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를 치밀하게 관리해야 한다. 우선 북한의 군사 도발과 중국의 ‘한국 흔들기’에 대한 효율적 대응책 강구다. 중국은 우려와 불만을 표시하며 한미일 협력체제의 균열 시도에 나설 것이다. 특히 한국을 겨냥한 회유·압박이 거세질 것인 만큼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한중 대화 채널을 통해 “3국 협력이 중국과 대결하려는 게 아니다”라는 메시지 발신과 함께 서울 소재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을 활성화해 한미일 협력에 비례한 한중일 협력도 병행·발전시키는 전략적 균형 유지가 중요하다. 연말 안으로 서울에서 한중일정상회의 개최도 준비해야 한다.
한미 동맹을 미일 동맹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미일 3각 협력의 지속 가능한 유지·발전 및 높은 수준에서의 공고화를 위해서는 한미 동맹이 미일 동맹에 준하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한미 원자력협정을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가 가능한 미일 원자력협정 수준으로 조정해야 한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으로 인한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상무장관 회담에서 구체적인 논의에 나서야 한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협력을 유도해야 한다. 캠프데이비드에서의 공약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내실 있는 협력체’로 안착하려면 3국 간 신뢰나 후속 조치의 속도 및 밀도도 중요하지만 핵심 변수는 결국 한일 관계다. 이번 회의 성공의 요체는 3국 협력의 ‘약한 고리’였던 한일 관계 복원이다. 3국 협력이 지속 가능하려면 핵심인 한일 관계를 관리해야 한다. 한일 간 고질적 쟁점인 독도 영유권 주장(19번째),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의 일본해(Sea of Japan) 표기 등이 변수가 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캠프데이비드 합의가 3국 협력의 원칙과 방향을 합의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제도적 틀을 갖췄지만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익이 무엇인가’에 대한 야당의 지적을 반박할 후속 조치들이 필수적이다. 온·오프라인을 통해 이번 합의가 국익과 국민에 어떤 의미가 있고 또 어떤 도움이 되는지 ‘국민 체감형’ 소통과 홍보 강화에 힘써야 한다. 정상 간의 핫라인 구축이 국제정치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것도 필요하다.
모든 국제정치는 국내 정치의 영향을 받는다. 1972년 핑퐁 외교를 성사시킨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모든 외교의 초점을 워싱턴의 국내 정치로 연결시키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국내 정치의 난국을 국제정치의 성과로 돌파하는 데 귀재였다. 특히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과 손을 잡고 외교 성과를 포장해 국민들에게 쉽게 전달한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수준이었다.
미국 역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소에도 불구하고 내년 11월 미국 대선 결과는 캠프데이비드 정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종적으로 대한민국 역시 합의사항의 불가역성(irreversibility)과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 확보 여부는 내년 4월 총선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내년 총선은 윤석열 외교의 명운이 걸려 있는 정치 일정이다. 국내 정치가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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