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벤처기업들이 경영권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오너 일가의 부녀간, 남매간 분쟁은 물론이고 주요 주주의 이해관계로 인한 내홍(內訌), 적대적 인수합병(M&A) 사례까지 점입가경이다. 경영권 분쟁으로 결국 경영에 타격을 받고 시장의 신뢰도가 하락하면서 기업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경영권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바이오 벤처는 제일바이오(052670), 유영제약, 씨티씨바이오(060590), 크리스탈지노믹스(CG인바이츠(083790)) 등이다. 동물의약품 전문업체 제일바이오는 오너 일가에서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4월 제일바이오 이사회가 최대 주주이자 창업자인 심광경 전 대표를 해임하고 장녀 심윤정 신임 대표를 선임하면서 본격화됐다. 심광경 전 대표는 이에 반발해 같은 달 법원에 심윤정 대표의 직무집행을 정지해달라며 이사회 결의 효력 정지 등을 청구했다. 5개월간 이어진 부녀간 싸움 끝에 지난 17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심광경 회장은 대표이사 자리를 되찾았다. 하지만 그동안 회사는 관리종목에 지정되고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에 오르는 등 경영에 타격을 받았다.
유영제약은 남매간 분쟁을 겪고 있다. 유주평 현 대표와 유우평 전 대표 사이의 경영권 다툼이다. 유주평 대표가 지난 2월 신임 대표로 선임되는 과정에서 전 대표이자 오빠인 유우평 부회장에게 사임을 종용했다는 주장이다. 모친인 이상원 회장은 “경영권 뺏기 시도는 옳지 않으며 유영제약 대표이사로 취임하려는 유주평 부사장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유영제약은 이에 대해 “경영권 강탈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씨티씨바이오는 파마리서치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파마리서치가 지난 2월 씨티씨바이오 지분을 매집하면서 분쟁이 시작됐다. 파마리서치는 올해 약 300억 원을 투입해 씨티씨바이오 지분을 사들였다. 이달 16일에는 씨티씨바이오 주식 취득에 200억 원을 추가 투입하겠다고 공언했다. 추가 지분매수가 성공할 경우 20%에 가까운 씨티씨바이오의 지분을 손에 쥐게 된다. 씨티씨바이오의 최대주주는 이민구 대표 등 특수관계인이지만 지분율은 15.32%에 불과해 경영권이 위협받고 있다.
CG인바이츠는는 대주주 간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경영권 분쟁이 일어났다. 지난 2020년 최대주주였던 조중명 회장은 주식담보대출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금호HT에 경영권 지분 일부를 넘겼다가 다시 같은 가격에 사오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지난달 중순쯤 조 회장은 약속 기한을 앞두고 새로운 투자자인 뉴레이크인바이츠를 대상으로 580억 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최대주주 변경과 금호HT 이사 해임 건을 수반하는 증자였다. 다만 CG인바이츠가 임시총회에서 조 회장은 물론 최대주주 뉴레이크인바이츠측 인사 2명과 금호에이치티측 인사 2명을 사내이사로 임명하면서 갈등은 어느 정도 봉합됐다.
바이오 벤처에 경영권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오너나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다른 산업 분야와 비교해 낮기 때문이다. 지배력이 있다고 판단하는 잣대인 33.3%는 고사하고 20%도 못 넘는 기업들이 대다수다. 신약 개발, 생산능력 확대 등을 위해 주주나 외부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하는 바이오 기업 특성상 유상증자를 반복하면서 지배력이 희석된 탓이다.
오너 중심의 보수적인 경영방식도 문제로 꼽힌다. 연구개발(R&D)에서 시작한 바이오 벤처 창업주들이 독단적인 의사결정 방식을 유지하다가 경영권 분쟁에 직면한 경우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오 창업주들이 R&D는 잘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영이 서툰 경우가 있어 실적악화가 초래되거나 하면 대내외 반발을 산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바이오 벤처의 경영권 분쟁이 업계 전체에 대한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경영권 분쟁은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어디서든 발생할 수가 있으나 지분율이 적은 바이오 기업들은 발생 위험이 더 높다”며 “바이오 투심이 위축된 시기에 분쟁이 이어지면 시장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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