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2%포인트 내린 1.4%로 조정했다. 정부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출구가 보이는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상저하고’의 기존 전망도 유지했다. 경기 리바운드 국면에 진입한 만큼 투자 촉진과 민생 안정을 위한 세제 혜택, 지역특구 등 인프라 조성으로 경제 체질 전환에 나설 방침이다. 다만 세수 부족으로 나라 살림의 효율성을 크게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기획재정부는 4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성장률 전망치를 1.4%로 제시했다. 올해 물가 전망치도 3.5%에서 3.3%로 하향했다. 일자리 수요 회복 등에 따라 취업자 목표는 10만 명에서 32만 명으로 높여 잡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며 “올 하반기는 위기를 극복하면서 한 단계 더 성장해온 한국 경제의 저력을 보여줄 중요한 변곡점”이라며 “특히 투자를 막는 결정적 규제인 ‘킬러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쇼어링 재정지원·가업승계 과세특례 세율 10%단일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 합동브리핑에서 “어느 때보다도 힘든 시기를 보내왔다”며 “이제는 그 긴 터널의 끝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터널 출구가 보이는 모멘텀을 살리기 위해 첨단 전략산업의 리쇼어링을 촉진하기로 했다. 윤인대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국가전략기술 첨단전략산업의 리턴을 촉진하기 위해 반도체 등에 대해 최소 외국인 투자 수준으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해외에 나갔던 기업이 국내에 돌아와 설비 등을 투자할 경우 투자 금액의 50%를 재정 지원하게 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연내 고시 개정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의 국내 기업 유치에 필요한 국가 재정 지원 기준을 바꿀 예정이다.
국내 기업 리턴뿐 아니라 외투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해당 기업에 대한 현금 지원을 현재 500억 원에서 더 늘리고 연말 일몰이 예정된 외투기업 종사자인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소득세 감면도 연장 조치한다.
중견·중소기업의 가업승계 세 부담 또한 대폭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세금의 일부를 나눠 내는 연부연납 기간의 경우 현행 5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난다. 정부는 특히 증여세 과세특례 세율을 10%로 단일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는 과세표준 60억 원까지는 10%, 60억 원 초과분은 20%를 적용받고 있는데 이를 10%로 똑같이 낮춰주겠다는 것이다. 이 개편안은 이달 세법개정안에서 더 구체화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아울러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를 적용받은 기업이 5년 내 업종을 변경할 경우 바꿀 수 있는 업종 관련 허용 범위를 대폭 완화해주기로 가닥을 잡았다. 산업 재편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는 만큼 기업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꾸릴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겠다는 의미다.
무역금융 역대 최대 184조 원 공급
수출 기업에 대한 무역금융 지원도 발표됐다. 정부는 역대 최대인 184조 원을 무역금융에 투입하고 현재 3570억 원 수준의 중소기업진흥공단 수출 중소기업 대출 지원은 5070억 원을 우선 대출하고 1500억 원을 추가로 지원할 수 있게 했다.
국가전략기술·시설 세액공제 범위는 현재 수소, 미래형 이동 수단, 바이오의약품 외에 더 확대해 임시 투자 세액공제 활용도를 더욱 높일 계획이다. 정부는 하반기에 26조 원 규모의 시설 투자 자금을 공급하는 한편 현재 100억 원인 수출 기업의 대출한도 역시 150억 원으로 증액해 주기로 했다. 나프타, 나프타 제조용 원유 관세는 연말까지 0%를 적용하고 반도체 등 제조 설비 물품 운반용 기구 등의 재수출 면세 적용도 추진된다.
공정시장가액비율 60%유지·보증금 차액 대출 DSR 대신 DTI60%
국민의 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 종합부동산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종전 수준인 60%로 유지한 것도 눈에 띈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은 세금 부과 기준인 과세표준을 정할 때 공시가격에 곱하는 비율이다. 이게 높아지면 과세표준이 올라가 세금이 늘어난다.
당초 시장에서는 정부가 이번 경제정책방향에서 공정시장가액비율을 60%에서 80%로 높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정부는 동결을 선택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부동산 가격 급등 이전인 2020년 종부세 주택분 징수액이 1조 5000억 원인데 공정시장가액비율을 60%로 했을 때 이 정도의 세금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그는 “종부세 부담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이전보다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만약 공정시장가액비율을 80%로 올리게 되면 2020년 수준보다 세금이 더 많아지는 경우도 있는 만큼 이를 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또 최근 빗발치는 역전세·전세사기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 7월 말부터 1년간 보증금 반환 목적의 대출 규제를 일시 완화하기로 했다. 임대사업자의 경우 임대업이자상환비율(RTI·임대소득/이자비용)을 당초 1.25~1.5배에서 1.0배로 낮추고 개인의 대출 한도는 DTI 60%를 적용하기로 했다.
지원 대상은 보증금 반환 기일이 도래했으나 역전세 상황에 처한 집주인으로 대출금액은 보증금 차액 내 지원이 원칙이다. 다만 후속 세입자를 구하지 못했을 경우 후속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으로 대출금 우선 상환을 전제로 대출 한도 내 전세보증금을 대출해준다. 이번 규제 완화로 연소득 5000만 원인 차주의 대출 한도(금리 4%, 만기 30년)는 DSR 규제 적용 시 3억 5000만 원인 데 비해 DTI 규제 적용 시에는 5억 2500만 원으로 1억 7500만 원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형주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은 “역전세로 집주인이 추가로 돌려줘야 하는 금액이 평균 7000만 원인 것으로 조사된 만큼 대출 한도를 1억 7500만 원 늘려주면 역전세 문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DTI는 이자비용만 보는 반면 DSR은 신용대출·자동차·카드론 등 타 대출의 원리금까지 반영하는 만큼 기준을 DSR에서 DTI로 바꾸는 것으로도 보증금이 오른 폭만큼 추가 대출을 받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년·신혼 부부 주거 지원 강화…전세자금 추가 투입 44조원 공급
청년·신혼부부에 대한 주거 지원도 강화한다. 디딤돌·버팀목 대출 등 주택 구입, 전세자금에 23조 원을 추가 투입해 총 44조 원을 공급하고 주택청약종합저축 소득공제 적용 연간 납입 한도도 24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정부는 아울러 전세금 반환 보증료를 30만 원까지 전액 지원하는 한편 신혼부부 대상 주택 구입, 전세자금 특례 대출의 소득 요건도 전세 6000만 원, 매매 7000만 원에서 전세 7500만 원, 구입 8500만 원으로 완화해 주기로 했다.
공공임대주택은 연내 10만 7000가구가 공급되는데 하반기 중 공공임대 3만 8000가구에 대한 입주자모집·입주 등이 실시된다. 아울러 2024년 상반기까지 신규 공공택지 15만 가구도 발표한다. 소상공인에 임차료를 인하한 임대인에 대한 세제 지원 일몰을 올해 말에서 내년 말로 연장하고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 개정안도 입법을 조속히 추진할 방침이다.
결혼 지원시 증여세 비과세 한도 5000만원서 확대
부모가 자식에게 결혼 자금을 줄 경우 증여세 공제 한도를 현재 5000만 원(10년 합산)보다 확대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출산·보육 수당에 대한 비과세 한도는 10만 원 이상으로 늘어나며 연 1200만 원이 넘는 사적연금 수령에 대해서도 세 부담을 줄여준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조정 폭은 여론 수렴 후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출산·양육비에 대한 공제 확대 방안은 장기적 관점에서 검토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출산·보육 수당에 대한 소득세 비과세 한도 역시 월 10만 원에서 더 오른다. 2004년 제도 도입 이후 그대로인 한도를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해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반영한 조치다. 기업이 근로자에게 양육비를 지원할 경우 사업 운영에 꼭 필요한 경비로 인정해 법인세 부담을 덜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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