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680만 명이 사라져버린 것 같습니다.”
최근 정부의 차관 인사 발표를 지켜본 한 소상공인 정책 관련자의 탄식이다. 그는 “이번 정부에서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난달 29일 정부는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에 오기웅 중기부 기획조정실장을 임명했다. 그는 창업·벤처 전문가 출신이다. 이로써 중기부는 벤처기업가 출신의 이영 장관에 이어 차관까지 벤처 전문가가 넘버1·2 자리에 앉게 됐다. 언뜻 보면 정부가 주력하고 있는 미래 성장 동력 확보와 수출 확대 정책 기조에 딱 맞는 인사로 보인다.
하지만 소상공인들 사이에서는 “또 벤처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실 직전 차관은 소상공인 담당 업무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도 중기부 정책의 무게중심이 벤처·스타트업으로 쏠렸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이제는 아예 소상공인 업무를 해보지도 않은 인물이 차관에 임명되니 이런 실망감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소상공인 업계 관계자는 “소상공인 주무 부처인 중기부 이름에 소상공인이 빠져 있듯 원래부터 680만 소상공인은 존재감이 없다는 말이 있다”면서 “이번 인사를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며 허탈해 했다.
물론 우리 경제에서 벤처·스타트업이 중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국가 경쟁력을 위해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것도 맞다. 문제는 680만 명의 소상공인들이 처한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는 점이다. 코로나19 당시 이뤄진 대출에 대한 만기 연장, 상환 유예 조치가 끝나는 9월이 다가오면서 ‘9월 위기설’마저 제기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6월 소상공인들의 체감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전월 대비 6.4포인트 하락한 63.9를 기록했다. 7월 전망 BSI도 전월 대비 7.1포인트 떨어진 73.7로 나타났다. 빚을 갚지 못하는 소상공인들은 늘고 있고 고물가·고금리의 덫은 여전한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최저임금까지 인상되면 소상공인에게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안타깝지만 여러 지표가 ‘9월 위기설’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가리키고 있다.
벼랑 끝에 몰린 680만 소상공인을 안전지대로 이끌어야 할 사명은 주무 부처인 중기부에 있다. 당장 전통시장이나 상가로 직접 나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현장에 통할 수 있는 정책 개발에 힘을 쏟아야 한다. 많은 소상공인이 “정부나 정치권 관계자들은 총선이 다가와야 시장에 나타날 것”이라며 이 정부에 대한 희망을 속속 포기하고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실기하면 더 큰 재앙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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