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료를 뿌릴 때 힘들었는데 기계를 사용하면 훨씬 편하게 농사를 지을 것 같아요.”
23일 경남 합천군 마늘밭에서 만난 귀농 4년 차 김연민(47) 씨는 자동으로 물·비료 등을 주는 기계를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씨는 “파종·수확 시기가 겹치는 만큼 이런 기계들이 더 많아야 쉽게 (기계들을) 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바람을 전했다.
농사는 뙤약볕에서 땀 흘리는 고된 일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계화된 농법이 개발되면서 수고를 많이 덜 수 있게 됐다. 여기에는 품종별로 기계화 농법 개발에 나서는 농촌진흥청의 역할이 크다. 이날 농진청이 합천군농업기술센터와 함께 연 ‘마늘 스마트 기계화 재배 모델 시연회’에도 김 씨와 같은 농업인 100여 명이 모였다. 바로 기계가 짓는 마늘 농사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합천은 경북 의성, 경남 창녕과 함께 전국 최대 마늘 산지로 꼽힌다. 마늘 농사의 기계화율은 61.8%다. 경운·정지(98%), 굴취(95%)는 100%에 가깝지만 파종(3%), 수집(2%), 줄기 절단(10%)은 걸음마 수준이다. 벼농사의 기계화율이 99%를 넘나드는 것과도 비교된다. 자연스럽게 노동 부담도 크다. 마늘밭 10a당 파종 단계에서 30.5시간, 수확 단계에서 32.9시간의 노동시간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근골격계 질환 위험도 커진다.
농진청은 이에 마늘 재배 과정에서 기계화로 농민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이날 현장에서도 재배관리→줄기 절단→수확→건조→저장으로 이어지는 마늘 재배 과정 전반에서 기계화 현황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정밀 재배 장치인 비산저감형 드론방제기는 공기흡입형 노즐이 부착돼 공중 농약 살포시 약제가 바람에 날리는 양을 30% 이상 억제해준다. 자주식 다기능 정밀 관개 시스템은 토양 수분을 측정해 맞춤형 물 관리가 가능하다. 비료 살포도 할 수 있다.
줄기절단기는 트랙터 등에 부착해 마늘에 달린 줄기를 자동으로 끊고 굴취수확기는 마늘을 땅에서 파낸 후 흙을 털어내 저장 용기인 톤백에 자동으로 넣는다. 수확한 마늘을 바로 저장하면 쉽게 부패한다. 이에 농진청은 마늘을 말리는(예건) 차압송풍예건장치와 저온저장시설도 개발했다. 장치 뒤쪽에 마늘을 적재하고 비닐을 감싼 후에 송풍 장치를 돌리면 내부에 공기가 순환하면서 예건 작업이 이뤄진다. 이렇게 예건한 마늘은 저온저장시설에 보관한다.
일련의 기계화가 실제 농사에 적용되면 마늘 농사의 기계화율은 61.8%에서 90% 이상까지 오른다. 조재호 농진청장은 “마늘 스마트 기계화 재배 모델을 적용해 생산하면 관행 대비 노동력은 67%, 생산 비용은 47%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마늘밭 10a 기준으로 노동시간을 250.8시간에서 81.7시간으로, 비용은 403만 4000원에서 212만 7000원으로 줄일 수 있다. 손실율은 3% 미만이다.
다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이날 소개된 기계의 가격은 최소 수백만 원이다. 1억 원이 넘는 기계도 있다. 비용 부담이 크다는 뜻이다. 임대 서비스를 운영하지만 파종 등 특정 시기에 수요가 몰려 충분한 기계 공급이 만만찮을 수 있다. 한 농민은 “마늘을 수확하는 날이 1년에 열흘 정도인데 비라도 오면 그마저도 줄어든다”며 “필요 농가는 많고 대여할 기계는 한정된데다 인력마저 부족하다 보니 소규모 농가임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가 장비를 구입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조 청장은 “합천 등 주산지에서는 기계 사용이 촉진될 필요가 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보조금 지원이 가능할 여지가 있다”며 “작은 농가의 경우 구매 부담을 안기기보다 농기계 임대사업소에서 부착기를 임차해 쓸 수 있게 하는 방식을 먼저 정착시키겠다”고 답했다.
농진청은 마늘을 비롯한 밭작물 기계화율을 지난해 63.3%에서 2026년까지 77.5%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특히 노동 부담이 큰 마늘과 양파가 우선 추진 대상이다. 농진청은 시군 농업기술센터·지역농협·농기계조합 등과 함께 전국 13개 시군 20개 지역에서 기술을 보급하고 있으며 표준 모델도 구축 중이다.
기계화에 적합한 품종 개발에도 나섰다. 가령 배추(정식기), 감자(파종기), 고구마(수확기), 인삼(정식기) 등이 대상이다. 조 청장은 “농촌의 고령화율이 특히 심각한 만큼 농업의 기계화는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며 “정부 국정과제인 ‘농업의 미래성장 산업화’의 핵심 역시 농업의 기계화”라고 강조했다. 농진청은 마늘과 양파 생산 기계의 현장 기술 보급을 추진하기 위해 6월 중순까지 경북 의성, 전남 구례 등에서 지역별 현장 연시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