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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을 공급망 강화 지렛대로"…반도체·IRA 공조체계 구축한다

[한일 협력 복원]

◆ 재계 대화채널 속속 정상화

소부장 對中 의존도 완화 위해

日과 협력 강화 목소리 높아져

기시다 답방에 '물밑논의' 탄력

"대기업 첨단소재 수급 협력부터

中企 진출까지 폭넓게 타진해야"





우리나라와 일본의 제철 산업 담당 관료와 포스코·일본제철 등 한일 주요 철강 기업 관계자들은 2018년까지 정례적으로 ‘한일 철강 민관협의회’를 열어왔다. 개최 횟수만도 총 19차례에 이른다. 논의 주제는 온실가스 감축 기술 연구개발(R&D) 협력, 양국 철강 교역 동향,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철강 관세 등 다른 나라의 통상 정책에 대한 공조 방안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2019년 우리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리고 연이어 일본 정부가 플루오린폴리이미드·포토레지스트·불화수소 등 반도체 소재 3대 품목의 수출을 규제하면서 모든 게 틀어졌다. 양국 관계가 급랭하면서 철강 업계의 만남도 끊겼다. 이런 경색 관계가 전환되는 계기는 올 3월 한일정상회담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에 제3자 대위변제를 통한 강제징용 해법을 제시했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이달 7~8일 방한 가능성이 나오면서 양국 철강 업체 간 협의회 재가동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세종 관가의 한 관계자는 “우리 정부로서는 정치적 결단을 통해 한일 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한 셈인데 일본도 톱다운 방식으로 해빙 무드를 살려야 한다는 여론을 외면하기 힘들 것”이라며 “기시다 총리의 답방과 맞물려 양국 간 경제·산업 분야 협의 채널의 복원 속도가 더 빨라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실제 이달 16~17일 열리는 ‘제 55회 한일 경제인회의’에서는 첨단산업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 강화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특히 23~26일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세계반도체협의회(WSC)에서도 한일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이 만나 구매·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무 논의를 할 가능성이 높다. 국책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한일 무역 분쟁 이후 양국 간 관료 사이에서도 실무적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았다”며 “대화 채널이 민간과 공공 사이드에서 동시에 재개되면 일상적인 대화 창구 복원을 넘어 복잡다단한 현안에서 솔루션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본과의 협력을 지렛대로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공급망을 비롯해 신산업 전략 강화 등의 대책을 마련할 필요성을 주문하고 있다. 당장 중국은 여차하면 희토류 등에 대한 금수 조치에 나서는 등 자원 민족주의를 노골화할 가능성이 크지만 소재·부품·장비 등에서 우리의 대중국 의존도는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우리의 중국에 대한 소부장 수입 의존도는 일본과의 무역 갈등 전인 2018년 28.3%에서 지난해에는 29.9%로 커졌다.



반면 일본은 같은 기간 18.3%에서 15.0%로 낮아졌다. 우리로서는 대중 무역 의존을 낮춰야 하는 상황에서 일본을 활용해 활로를 찾을 수 있다. 이지평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는 “한미일 공조가 중요해지고 있고 양안(대만과 중국) 갈등에 대해서도 대비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우리로서는 공급망 안정 측면에서 한일 경제 협력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과의 경제 협력 정상화를 대일 무역 역조 현상의 심화라는 단순 프레임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조언도 나온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양국 관계를 경쟁 관계로만 파악해서는 위기 국면에서 종합적 대처가 안 된다”며 “일본 시장의 경우 우리 중소기업의 수출 비중이 35.6%(2022년 기준)로 10% 중반대의 다른 시장보다 높다는 점에서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는 우리 중소·벤처기업에 더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국책연구기관장은 “일본과의 협력은 미국의 동맹에 대한 처우를 개선시키는 데도 유리하다”며 “반도체 보조금,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관련한 논란에서 일본과의 공동 보조를 통해 미국을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사실 일본과의 경제 정상화는 이미 시동이 걸린 상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일 수입액은 2018년 546억 달러에서 2020년 460억 달러로 떨어졌지만 지난해에는 547억 달러로 반등했다. 이는 산업 및 무역 측면에서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양국 간 협력 구조를 일거에 깰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겼다. 실제 소부장 일본 기업의 경우 양국 간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2019년 무렵 한국에 제조 공장 투자를 통해 자국 정부의 간섭을 원천적으로 없애려는 시도도 많았다.

이 교수는 “한일 간 마찰이 있지 않았다면 교역 규모가 더 커졌을 것이라는 점에서 비즈니스 측면에서 기회 상실이 많았다고 봐야 한다”고 짚었다. 재계의 한 임원도 “외교 분야에서 한미일과 북중러 간 대립 구도가 굳어지면서 한일 간 경제 협력의 중요성은 안보 측면에서도 커지고 있다”며 “대일 교역이 정상화되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스타트업들의 일본 진출에도 기회가 생길 수 있고 대기업들의 첨단 소재 수급 측면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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