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와 금융 당국이 암호화폐 관련 법 제정을 준비 중인 가운데 암호화폐 상장 및 발행에 대한 내용은 논의에서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는 암호화폐로 인해 납치·살인까지 벌어졌지만 정작 법이 제정되더라도 화근이 된 암호화폐 거래소의 상장 문제는 ‘사각지대’로 남게 되는 셈이다.
13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법안소위)를 열고 암호화폐 관련 법안을 처음으로 논의했다. 산업 육성보다도 이용자 보호 및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규제 필요성이 커진 만큼 법안명은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가칭)’로 정해졌다. 이 법안에는 그간 국회에 발의된 암호화폐 관련 제·개정안 18개의 내용이 총망라됐다.
문제는 ‘시급한 사항을 중심으로 최소한의 입법을 추진’하기로 여야가 합의하면서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진입 규제나 암호화폐 발행·상장 규제가 모두 논의에서 제외됐고 일단 업계 자율규제에 맡기기로 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업계는 자율규제의 유효성에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거래소의 암호화폐 상장 과정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검찰은 11일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원의 전 상장 담당 임직원 2명과 상장 브로커 2명을 2년 반 동안 29개 암호화폐의 상장 대가로 총 30억 4000만 원을 챙겼다는 혐의로 구속했다. 그 안에는 최근 강남 납치·살인 사건의 시발점이 된 퓨리에버와 사기 혐의를 받는 피카코인도 포함됐다. 국내 2위 거래소인 빗썸도 ‘뒷돈 상장’ 의혹을 받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등 5대 거래소로 이뤄진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가 상장 심사 공통 가이드라인을 제정했지만 가이드라인 제정에 참여한 5개 사 중 이미 2개 사에서 ‘상장피’ 의혹이 불거진 셈이다. 가이드라인 미이행 시 별도 제재도 없다. 코인원은 뒷돈 상장 의혹과 관련해 첫 재판이 이뤄진 13일에야 “연루 코인을 전수조사하고 있다”고 뒤늦게 발표했다.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는 “주요 거래소에 상장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발행사들은 큰 돈을 벌게 되는 경우가 있어 불공정거래 행위를 규제한다고 해도 부실 상장을 막지 못하면 투자자 피해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단독 상장이 많은 코인마켓거래소의 경우에는 부실 상장이 더 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논의 중인 가상자산법이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 행위는 규제한다고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마저도 현실적으로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불공정거래 행위를 적발해내려면 금융 당국이 조사를 해야 하는데 조사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법안이 마련돼도 제2·제3의 퓨리에버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장이 신뢰를 다시 얻으려면 금융 당국이 주가 조작을 모니터링하는 것처럼 암호화폐 마켓메이킹(MM) 등도 추적할 수 있는 별도의 독립 조직이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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