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해 11월 방한하면서 ‘제2의 중동 붐’이 거론된 데 이어 최근 사우디 관련 국내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했다. 사우디국제산업단지회사(SIIVC)가 국내 중소기업 23곳에 대한 실사를 진행했다는 소식이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된다. 사우디가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비전2030’ 프로젝트 중 하나인 사우디·한국 산업단지 건설과 연계된 실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투입되는 자금 규모가 1차 사업에만 약 13조 원에 이른다고 하니 관련 기업 주가가 들썩이는 것도 이해는 된다. 그런데 2016년 4월 발표된 후 약 6년 동안 진척이 없던 해당 프로젝트가 최근 다시 부각된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몸담고 있는 자문사는 2018년 3월 ‘사우디의 새로운 미래, 네옴’이라는 제목으로 비전2030 프로젝트를 다룬 적이 있다. 당시 조사 결과라면 사우디 네옴시티의 1단계 완공 시기는 2025년이다. 그러나 현재 기준으로 보면 계획대로 진행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동안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아마도 2018년 발생한 미국계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이 분기점이 된 것 같다.
카슈끄지 암살이 국제적 이슈가 되면서 사우디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외국인 파트너들이 대거 이탈했고 2015년 급하게 권력을 잡은 빈 살만 왕세자를 암살 배후로 강력하게 비판한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가 악화하면서 사업이 진척되지 못한 것이다. 미국 없이는 이란이라는 위협을 해결하기 힘든 사우디 입장에서 국가 개혁 프로젝트라는 내부 문제에 집중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사우디의 비전2030을 되살릴 중대 사건이 10일 발생했다. 사우디와 이란이 관계 정상화에 전격 합의해 발표한 것이다. 2016년 이후 7년 만에 국교 재개를 선언한 것인데 2개월 내 양국의 대사관 복원 및 상호 안보 협정에 대한 대화도 시작할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 간 뿌리 깊은 반목과 갈등을 씻어내고 실질적 경제 이익을 추구하겠다는 결단을 한 셈이다.
이로써 사우디는 국내 개발 프로젝트 수행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란 역시 경제난과 국내 시위 확산, 미국 등 서방의 경제적 제재 강화 등 악재 속에서 돌파구를 만들어 나갈 회심의 카드였을 것이다.
사우디·이란 관계 정상화의 중재자가 중국이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양국 간 합의문이 발표된 곳이 중국의 베이징이었고 그 시점도 시진핑 국가주석의 세 번째 임기를 확정하는 회의 기간이었으니 상징성이 작지 않다. 사우디와 이란산 원유의 최대 구매자인 중국은 중동 국가들에 매우 중요한 경제적 파트너이기도 하다.
특히 사우디와 중국의 관계는 각별하다. 양국이 추진하는 국가 개발 계획이 통합될 수 있는 잠재력 때문이다. 2016년부터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사우디의 비전2030 통합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는데 매년 정상 및 고위급 회담이 지속되고 있다. 막대한 자본과 에너지를 보유한 사우디, 그리고 인력 및 기술, 인프라 구축에서 세계 최고의 저력을 가진 중국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지지부진했던 사우디의 프로젝트,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한국에 큰 기회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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