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가격 하락과 그에 따른 금융기관의 부실은 항상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를 야기했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과 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는 과거의 공포를 떠올리게 한다. SVB은행을 비롯해 올 해 은행들의 파산 규모는 3190억 달러를 넘는다. 2008년 이후 최대다.
아직 SVB 파산을 시스템 위협으로 볼 정도는 아니다. 규모가 작아서가 아니다. 통상 금융 위기는 과잉 부채와 부실이 원인이다. 이번 SVB 파산은 자산 가격 하락(국채 가격 하락)이 기폭제가 됐다. SVB은행의 대출은 예금 증가 속도에 비해 빠른 건 아니었다. 과잉 대출과 부실 대출 문제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미국 국채에 투자했다가 이 지경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미국 소형·지역은행의 규모가 작지 않다는 사실이다. 3월 초 기준 미국 상업은행의 전체 대출 12조 달러 가운데 대형은행의 대출 규모는 6조5000억 달러, 소형은행은 4조5000억 달러를 차지한다. 지난해 11월 이후에는 소형 은행들의 대출 증가 속도가 더 빨랐다. 소형 은행들의 대출은 전년 대비 5820억 달러 증가한 반면 대형은행 대출은 4739억 달러 늘어나는 데 그쳤다.
소형 은행 예금이나 현금 보유 규모는 대형 은행에 비해 작다. 대형은행 대비 소형은행의 대출 비중은 70%인데 비해 예금은 51%, 현금 비중은 33%에 불과하다. 미국 대형 금융기관과는 달리 자산 2500억 달러 미만의 금융기관들은 상대적으로 규제를 덜 받는데, 그 틈을 노려 대출 자산이 늘어난 것이다.
SBV 은행 예금자들은 보다 안전한 대형 금융기관이나 단기 머니마켓펀드(MMF) 등으로 자금을 옮길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의 지역 및 소형은행들과 거래가 많은 기업들, 주로 벤처캐피탈(VC)이나 스타트업들의 자금 조달 또한 어려워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지난 해 4분기 미 연준의 대출 서베이(Senior Loan Officer)에서도 미국 소형은행들이 느끼는 신용 위험은 과거 경기 침체 수준만큼 빠르게 높아졌다. 이렇다보니 은행들의 대출은 점차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금리가 상승하는 데는 한계가 뚜렷하다. 즉 SVB 파산은 금융기관들의 위기라기보다는 그동안 버블 팽창의 덕을 봤던 테크(Tech) 기업과 VC들의 구조조정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대형주보다 러쎌 2000 등 중소형주의 성적이 좋았다. 대형 은행보다 소형 은행 대출 증가율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출이 둔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소형주가 더 힘을 받기는 어려워지게 됐다. 실제로 SVB사태 이후 FANG+지수가 강하다.
국내 증시에는 중립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의 대출 둔화가 예상되는 만큼 외국인 투자가들의 한국 대형주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수출과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민감한 코스피보다 코스닥 시장과 중소형주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국내에선 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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