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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사면 세금 내라고?…이 나라 참 대단하네 [똑똑!스마슈머]

필리핀, 일명 ‘루이비통稅’ 추진

하원에 제출된 '사치세 확대' 법안

보석·요트 등에 도매가 20% 사치세

세율 25%↑, 명품백·시계·회원권 등 확대

"부자 '사람' 아닌 '사치소비' 과세가 효과"

韓도 12년 세법개정때 '명품가방세' 논란

세금·가격인상 불구 '취향소비' 명품인기↑

'중산층 명품 구매도 사치인가' 기준 논란

현지 여론·루이비통稅 통과 여부 등 주목

필리핀 마닐라의 루이비통 매장/사진=루이비통 홈페이지




대상은 약 117만 원 이상의 손목시계와 가방·가죽 제품, 1억 원 이상의 자동차, 병 당 46만 원 이상의 음료(주로 주류)다. 일정 금액을 초과한 클럽 회원권과 모피, 골동품도 포함할지는 검토 중이다. 여기 해당하는 물품을 구매하면 기존에 내던 개별소비세·부가가치세 외에 ‘또’ 별도의 세금을 붙인다. 이렇게 정부가 추가로 거둬들이는 돈은 연간 3670억 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필리핀 사치세 ‘확장판’


흥분하지 마시라.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필리핀에서 일명 ‘루이비통 세금(Louis Vuitton Tax)’이라 불리는 사치세 확대 관련 법안(House Bill No.6993)이 국회 하원에 제출됐다. 필리핀은 현재 국가 내국세법(National Internal Revenue Code) 150조에 따라 보석, 향수, 요트 등에 사치세 성격으로 도매가나 수입 가격의 20%를 소비세 및 부가가치세로 내게 한다. 이번에 제출된 법안은 해당 세율을 25%로 올리고, 적용 사치품 대상을 늘리자는 게 골자로 현지에서는 ‘루이비통세(稅)’로 불리고 있다.

법안을 발의한 주인공은 조이 살세다(Joey Sarte Salceda) 하원 의원이다. 하원 세입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5만 페소(한화 약 117만 원) 이상의 손목시계와 가방·가죽 제품, 50만 페소 이상의 고급 자동차 등도 사치세 목록에 포함시키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추가로 모이는 세금은 필리핀 돈으로 155억 페소(3670억 원) 이상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난해 6월 출범한 필리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정부는 경제 회복을 위해 과세 체계를 정비하고 세수 확대에 주력하고 있는데, 마르코스 대통령도 최근 “살세다 의원의 제안이 합리적이라고 본다”는 의견을 밝혔다.

일정 금액 이상의 손목시계와 가방, 고급 자동차 등 ‘비필수품목’에 추가 세금을 매기는 일명 ‘루이비통 세’를 제안하고 나선 필리핀의 조이 살세다 하원의원/사진 제공=필리핀 국회


부유세는 부자·투자자에 겁만 줘→과시적 소비에 세금


‘루이비통세’의 큰 그림은 사치품에 더 많은 세금을 매겨 세수를 확보하고 그 대신 다른 제품에 부과되는 세금을 낮춰 일반 국민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게 한다는 데 있다. 살세다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필리핀의 정치 경제에서 가장 슬프면서 치명적인 잘못은 부자들에게서 제대로 세금을 거둬들이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할 만큼 현재 필리핀의 구멍 많은 과세 시스템과 이로 인한 빈부격차에 불만이 많다. 실제로 비영리단체 옥스팜인터내셔널이 지난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필리핀 부자 9명이 나머지 하위 절반(5500만 명)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부자들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걷는 ‘부유세’를 주장하지만, 살세다 의원은 “부유세는 필리핀에 사는 부자들과 잠재적인 투자자를 겁주기만 할 것”이라며 사람이 아닌 그들의 소비 행위에 세금을 매길 것을 제안했다. 슈퍼 리치들의 과시적 소비는 유지될 수밖에 없기에 그들이 애용해 온 (많은 대중이 향유하지 않는) 비필수 품목(non-essential goods)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이다. 살세다 의원은 “부(富)에 세금을 물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과시적이거나 사치스러운 소비와 부동산(토지)에 대한 과세”라고 말한다. 이 방식은 수입 또는 판매 시점에 부과할 수 있어 보다 쉽게 ??집행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열심히 월급 모아 산 명품도 사치인가요?


루이비통세를 둘러싼 논란은 많다. ‘럭셔리’의 범위를 어디까지 봐야 하는지, 중산층이 자기가 사고 싶은 명품을 저축해 사는 것도 사치인지 등 기준과 가치 판단을 둘러싼 이견이 존재한다. (참고로 살세다 의원은 “명품을 구매하려는 중산층 소비자들은 다른 곳에서 돈을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를 사려고 돈을 모은다면 그 자체가 과시적 소비다”라고 말한 바 있다.) 명품에 부과되는 차별적 세금으로 인한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같은 상품과 서비스를 ‘세금 덜 내고’ 사기 위해 내국인 수요가 외국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살세다 의원이 낸 법안이 최종 통과돼 실제로 시행될지는 기약할 수 없다. 그동안 필리핀 사회 ‘상위 소수’의 기반을 흔드는 다수의 입법 제안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여기에 루이비통세는 적용 대상이 단순히 그동안 국가 과세 망을 피해온 일부 슈퍼 리치에만 국한되지 않고, 자기 표현을 위한 수단으로 특정 브랜드를 구매하려는 사람들까지 포함될 수 있어 찬반 여론도 팽팽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시내 한 백화점 명품 매장 앞으로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연합뉴스


한국선 2012년 이미 ‘명품 가방세’ 논란


우리나라도 2012년 세법 개정안 발표 때 이른바 ‘명품 가방세’로 비슷한 풍경이 연출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수입 가격 및 제조사 출고가 200만 원 이상의 가방을 시계·귀금속과 같은 ‘고가 물품’으로 분류하고 초과 금액에 대해 20%의 개별소비세를 추가로 붙이겠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개별소비세가 사치품 소비 억제를 위한 사치세 성격이 크다. 당시 정부 발표에 명품 업체를 비롯한 유통가에서는 ‘요즘은 중산층에서도 가방을 많이 사기 때문에 명품 가방을 부자들만의 사치품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거나 ‘나중에 환급을 받는다고 해도 세금이 더해진 소비자 가격을 보고 관광객들이 발길을 돌릴 수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이후 정부는 2015년 고가품에 대한 소비자 부담을 낮춘다며 가방과 시계, 카메라 등에 대한 개별소비세 부과 기준을 2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올려 잡아 사실상 세금 인하 효과를 제공했으나 명품 업체들이 오히려 가격을 올려 세금이 줄어든 만큼을 수익으로 챙기는 ‘배짱 영업’을 하자 기준 변경을 없던 일로 되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장에서 명품은 계속 잘 팔렸고,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 1인당 명품 소비액은 325달러(약 40만 400원)로, 미국 280달러(약 34만 8000원), 중국 55달러(약 6만 8000원) 등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자기 과시, 만족감, 취향의 표현, 리셀... 저마다의 이유로 명품을 사고 즐기는 고객은 점점 많아졌다.



비통稅는 효과를 거둘까? 이름 주인은 가만히 있나?


세금 더 붙인다고 (누군가는 과소비라 부르는) 명품 소비가 줄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사례에서 이미 확인했다. 필리핀에선 다를 수 있을까. 살세다 의원이 추진하는 법안은 과연 최종 통과돼 부자들이 구멍 낸 세수를 그들의 돈으로 채워 넣는 효과를 발휘할까. 이에 앞서 궁금한 것이 또 있다. 필리핀 현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법안 앞에 붙이는 ‘그 이름’의 진짜 주인은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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