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5일. A씨는 “아파트 1층에 돈 박스가 있으니 내려갔다 오라"는 남편의 뜬금없는 말에 어리둥절했다. 오랜 기간 ‘무직자’로 지내던 남편 B씨가 딱히 돈을 구할 곳이 없었으나 A씨는 일단 말을 따랐다.1층에 아무 것도 없어 집에 돌아오는 순간, A씨 눈 앞에 ‘지옥도’가 펼쳐졌다. 첫째 아들은 피에 흥건하게 젖은 채 누워있었다. A씨 역시 B씨 손에 무참히 살해됐다. 이를 지켜보던 둘째 아들도 변을 피하지는 못했다. 이날은 A씨와 B씨가 이혼 서류를 내기로 한 날. 끔찍했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새 출발을 시작하는 날이 A씨에게는 생의 마지막이 되었다.
B씨는 가족을 무참하게 살해하고 이날 오후 8시 10분께 119에 신고를 했다. ‘집에 돌아봐 보니, 가족들이 죽어있다’는 내용이었다. PC방에서 있었다는 알리바이로 본인 범행을 감추려는 자작극이었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흉기와 폐쇄회로(CC)TV에서 증거를 찾아냈다. 또 한 달 전부터 흉기를 구입하려는 등 계획 범죄의 전말이 드러나자 B씨는 ‘다중인격' ‘기억상실’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범행은 인정하되, 심신미약으로 감형을 노린 것이다. B씨는 "8년 간의 기억을 갑자기 상실했고, 그 동안 다른 인격이 활동하고 있었다”며 “최근 잔인하고 이기적인 또 다른 인격이 등장해 총 3명의 자아가 내면에 있다"고 주장했다. B씨는 유치장으로 이동하는 경찰차 안에서도 서로 다른 인격끼리 대화하는 치밀한 모습을 보였다. 또 조사 과정에서도 세번째 인격이 ‘유리하지 않은 얘기를 하지 말라’거나 ‘분석관을 인질로 잡아서 도망가자라고 협박했다’는 등 연극을 했다. 당시 수사를 담당한 수원지검 안산지청 김재혁 형사2부 부장와 정재훈 검사는 B씨 행동이 수상하다는 생각에 대검찰청에 도움을 요청했고, 곧바로 심리 분석에 돌입했다. 방철 대검 과학수사부 심리분석실장 지휘 아래 B씨의 호흡과 혈압, 뇌파, 행동 등을 분석해 피의자의 진실성과 성격 등을 종합 평가하는 ‘통합심리분석’이 진행됐다. 시작은 심리생리검사, 이른바 거짓말 탐지기였다. 조사관이 ‘내면에 인격이 여러 개 있느냐’고 묻자, B씨의 손바닥 땀 분비량과 혈압을 나타내는 그래프가 급격히 요동쳤다. 거짓이었다. ‘첫째 아들이 나를 죽이고 싶다고 했다는 범행 동기가 진실이냐’는 질문에도 ‘거짓’이라고 표시됐다. 방 실장은 2시간 가량의 면담 영상을 1초당 30프레임으로 쪼개 미세한 얼굴 근육 변화와 움직임, 표정까지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방 실장은 B씨가 거짓말에 따른 ‘인지 과부하’로 반응 시간이 늦어지거나, 답변을 머뭇거리를 모습을 포착했다. B씨는 다른 인격의 존재를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이를 인지 못했다. 또 어떤 사고로 인해 기억상실증이 온 지도 답하지 못했다. 대신 B씨가 ‘꾀병’을 부리고 있다는 지표는 높게 나왔다. 그가 사소한 일에 무시를 당했다고 느꼈을 때 적개감과 분노를 공격적으로 터뜨리는 특성도 파악됐다. 결국 B씨는 ‘아들이 허락도 받지 않고 본인 실내화를 신고 나가 범행을 결심했다’고 실토했다.
사건 현장인 거실에는 덩그러니 벗겨진 운동화가 발견됐다고 한다. 신발도 제대로 벗지 못한 채 뛰쳐가 숨진 아들을 품에 안은 A씨의 것이었다. B씨와 이혼해 새롭게 시작한다는 세 모자의 꿈은 이뤄지지 못했으나, 자칫 B씨의 거짓말 속에 묻힐 뻔한 사건은 대검의 심리분석으로 사건의 내막이 밝혀졌다. 대검 심리분석과는 모든 심리 분석을 종합해 만든 보고서를 김 부장검사와 정 검사에게 전달했다. 검찰은 B씨를 구속 기소하고, 이를 재판에 증거로 제출해 채택됐다. B씨에 대해서는 현재 1심 재판이 진행중이다. B씨는 첫 재판에서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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