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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 강국이 미래 에너지 전쟁 승자…석유처럼 자원무기화 가능성”[청론직설]

◆문재도 수소융합얼라이언스 회장

수소는 만들 수 있는 기술에너지, 자원 빈국도 강국 도약

청정수소 의무화 머지않아…공급 통제·패권 추구 가능성

文정부의 ‘그린수소 80% 수입’ 계획 비상식…종속의 길

원전 강점 살려 ‘핑크수소’ 개발, 안정적 투자재원 마련을

문재도 한국수소융합얼라이언스 회장이 15일 현대 수소차 ‘넥쏘’ 모형을 앞에 두고 “수소는 세계 에너지 시장의 재편을 몰고 올 게임체인저”라면서 “수소경제 도래는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가 약자 신세를 벗어날 기회의 문이 열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천연자원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는 세계 에너지 위기에 늘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선택지가 없어 늘 약자였죠. 이번 난방비 쇼크가 그런 사례입니다. 하지만 수소경제가 궤도에 오르면 상황은 달라질 것입니다. 수소는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에 ‘게임체인저’가 될 것입니다.”

‘수소경제의 전도사’로 불리는 문재도 한국수소융합얼라이언스(H2코리아) 회장은 1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수소는 만들 수 있는 기술 에너지”라며 “우리나라도 얼마든지 에너지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청정에너지인 수소는 석유와 가스 같은 화석연료를 대체할 이상적 에너지원이자 세계적인 탈(脫)탄소 흐름을 가속화할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정통 에너지 관료 출신인 문 회장은 지난해 20개국이 참여하는 세계수소산업연합회(GHIAA)를 창설하는 등 수소경제의 국제적 리더로 활약하고 있다. 7~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GHIAA 연차 총회에 참석하고 귀국한 문 회장을 서울 서초동 H2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난주 미국에서 세계수소산업연합회 연차 총회를 열었는데.

△수소경제에 대한 미국의 의욕이 매우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에게 미국에 수출하는 전기차 보조금 제외법으로만 알려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는 미국의 수소산업 진흥책이 담겨 있다. 2030년쯤 무탄소 청정수소 생산 비용을 1㎏당 1달러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수소 1㎏으로 100㎞(현대 수소차 기준)를 달릴 수 있다. 엄청난 경쟁력이다.

-H2코리아가 협회가 아닌 ‘동맹(alliance)’이라는 명칭을 쓴 이유는.

△협회는 특정 업종의 이해를 대변한다. 수소경제는 이제 시작 단계여서 특정 이해 단체가 없다. 모든 관계자들이 힘을 모으고 서로 연대해서 함께 가자는 취지다. 수소는 기술 에너지다. 기술적 난제를 풀어 상업화에 성공해야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기술 에너지라는 의미는.

△석유 같은 화석 에너지와 달리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에너지원이다. 우주의 75%가 수소다. 수소는 독립적 형태가 아닌 화합물 형태로 존재한다. 화합물을 깨서 수소를 따로 분리하는 게 핵심 기술이다. 수소는 기술력과 의지만 있으면 무한 생산이 가능하고 부산물로 물밖에 나오지 않아 친환경적이다. 액체로 압축하면 대량·장기 저장과 운송이 용이하다. 흔히 수소를 화폐의 저장 역할에 빗대 ‘에너지 화폐’에 비유하기도 한다. 수소가 에너지 전쟁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화석연료 기반 ‘그레이수소’는 과도기 현상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실증 사업이 지난해 9월 제주도에서 시작됐다. 제주 그린수소 생산 단지 조감도. 서울경제DB


-우리나라의 수소 기술력은 어느 정도인가.

△수소 생태계는 생산-저장·운송-발전-활용 등으로 나뉜다. 우리나라는 발전인 연료전지와 활용인 모빌리티(운송 차량)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다. 반면 수소 생산 분야는 취약한 편이다. 우리나라는 제주도에서 12.5㎿급 그린수소 생산을 위한 실증 사업에 착수했다. 미국은 200㎿급 투자가 곧 이뤄질 예정이다. 저장·운송 분야도 뒤처지지만 플랜트·조선 산업의 강점을 살릴 수 있다. 수소 생산 기지와 수소 운반선 같은 분야는 미래 먹거리이자 블루오션이 될 것이다.

-수소는 재생에너지의 대체재인가.

△수소는 기본적으로 신에너지다. 화석 에너지 대체는 물론이고 수소연료전지를 활용하면 풍력·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까지 대체할 수 있다. 대체재 성격도 있지만 보완재 성격도 있다. 선진국은 2015년 파리기후협약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면 탄소 배출을 2030년까지 40% 감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기후 여건과 계절에 따라 전력 생산이 들쭉날쭉하고 저장도 쉽지 않다. 재생에너지의 이런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게 수소다.

-수소에는 탄소를 배출하는 그레이수소도 있는데.

△수소를 얻는 가장 저렴하고 손쉬운 방법은 산업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나 천연가스 등을 분해해서 만드는 것이다. 바로 ‘그레이수소’다. 하지만 수소 생산 과정에서 탄소가 발생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레이수소는 수소경제 초기 단계의 과도기 현상이라고 본다. 2030년대에는 무탄소 청정수소 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레이수소 공정에서 탄소를 포집해 수소만 분리하는 ‘블루수소’가 요즘 각광을 받고 있다. 이 외에도 물을 전기분해하면 탄소 없는 청정수소를 얻을 수 있다. 전원이 재생에너지면 그린수소, 원전이면 핑크수소다.

수소차, 대형·장거리 강점선박·비행기 곧 상용화




문재도(가운데) H2코리아 회장이 지난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2023 수소 및 연료전지 세미나’에 전시된 현대차의 북미형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 앞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제공=현대차


-수소차가 전기차에 밀리는 측면이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승용차 부문의 경우 전기차가 우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기차는 아직까지 충전 시간이 수소차보다 오래 걸리는 약점을 갖고 있다. 미국의 월마트는 물류창고에서 수소 지게차를 쓴다. 충전 시간이 짧아 보유 대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소차는 대형·장거리 운송에서 경쟁력이 있다. 트럭과 특수차량은 물론 항만 내 운송 설비도 비교 우위에 있다. 프랑스 알스톰은 수소트램을 개발했다. 독일 자동차 메이커들은 수소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항공기와 선박도 곧 상업화 시대에 들어갈 것이다.

-우리나라는 풍력·태양광 발전 여건이 불리해 그린수소 생산에 제약이 있다.

△재생에너지 천국인 제주도와 태양광 투자가 집중된 전라도가 그린수소 생산에 최적지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상당량을 수입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최근 확정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2~2036년)에도 청정수소 30만 톤이 반영돼 있는데 대부분 수입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우리 기업이 재생에너지 여건이 좋은 캐나다와 호주·남미 등에 그린수소 생산 기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국내 반입도 쉬워진다. 일종의 수소판 해외자원개발이다. 우리 기업들이 제휴 국가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안다.

-해외 수입은 에너지 안보와 직결되는데.

△지금은 초기 단계여서 국가 간 연대와 협력이 절실하지만 2030년 이후 본격적인 수소 상업화 시대에 돌입하면 청정수소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청정수소 사용 의무화 조치가 첫 번째다. 이미 유럽은 올해 시험 도입하는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6개 품목에 그레이수소를 포함시켰다. 한마디로 청정수소만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유사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수소 생산국이 청정수소를 석유처럼 자원 무기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청정수소, 그린·블루·핑크 등 적절한 조합을


2021년 12월 윤순진 탄소중립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탄소중립 주간 개막식’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당시 만든 탄소 중립 로드맵에는 그린수소 80%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겠다고 했다.

△탄소 중립 시나리오에 억지로 꿰맞추다 보니 상식 밖의 계획이 나왔다. 탈원전 정책을 반영해 원전 기반의 핑크수소를 제외한 결과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국제적 ‘봉’이 된다. 에너지 종속의 길이다. 그린수소 80% 수입은 사실상 폐기됐다고 봐야 한다.

-원전 기반 핑크수소가 대안이 될 수 있는데.

△그렇다. 청정수소 생산 경쟁력은 기술력 외에도 전기요금이 좌우한다. 나라마다 전원별 생산원가는 차이가 있다. 일조량이 풍부한 국가는 태양광발전의 원가가 원전보다 낮지만 우리나라는 원전이 가장 저렴한 전원이다. 세계 어느 나라도 아직까지 핑크수소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해외 각국마다 연구와 실증 실험을 하고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에너지 대란을 겪으면서 해외 국가의 원전 가동이 늘어난 것은 전력 확보 외에도 미래의 수소 생산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소형모듈원자로(SMR)는 또 다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형 원전의 난제인 국민 수용성과 입지적 제약을 해소할 수 있고 출력 조절도 가능하다. 다만 전원별로 적절한 ‘에너지믹스’가 필요한 것처럼 수소도 생산 유형별로 균형을 맞추는 게 바람직하다. 그린·핑크·블루 수소 등 다양한 청정수소 생산·조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정부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미래 에너지 패권 전쟁에서는 수소 강국이 승자가 될 것이다. 탈탄소는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고 수소가 그 촉진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원의 93%를 수입하는 자원 빈국으로 에너지 전쟁에서 아무런 선택권이 없는 약자였다. 하지만 수소경제 시대에는 우리나라가 에너지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여건도 결코 불리하지 않다. 수소 생태계 구축은 에너지 안보와 탈탄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 정부는 40년 전 오일쇼크를 경험한 후 석유기금을 조성했다. 이 재원으로 석유 비축 시설과 액화천연가스(LNG) 인수 기지 등 인프라를 구축해 안정적 에너지 수급 기반을 마련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소경제기반기금’ 같은 안정적 재원 확보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He is…

1959년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정책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 25회 출신으로 동력자원부에서 공직을 시작한 에너지 정책통이다. 지식경제부 자원개발원전정책관과 산업지원협력실장, 대통령비서실 산업통상자원비서관,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 등을 지냈다.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을 거쳐 2019년부터 수소경제 민관 협의체인 수소융합얼라이언스(H2코리아)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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