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가 임박했다는 시장 관측에도 원·달러 환율이 가파른 하락(원화 가치 상승)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속도 조절 기대감에 위험 선호 심리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강달러 공포 국면이 지나갔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일본중앙은행(BOJ)이 과도한 완화 정책을 멈추고 추가 긴축 조치를 내놓을 경우 엔화가 추가 강세를 보이면서 달러화 가치 하락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1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6원 내린 1235원 30전으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4월 18일(1234원 40전) 이후 약 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날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3원 30전 내린 1238원으로 출발해 장중 하락 폭을 키우면서 1231원 80전까지 떨어졌다.
연초부터 미 연준의 통화 긴축 완화에 대한 기대가 형성되면서 위험 선호 심리가 되살아나자 원화 강세 국면이 전개되는 모습이다. 환율은 올해 첫 거래일인 이달 2일(1272원 60전) 대비 30원 이상 하락했다. 지난해 11월 말 대비로는 유로화·엔화·위안화 등 주요국 통화 중에서 절상 폭이 가장 크다.
특히 한은이 최종금리 3.50~3.75% 수준에서 인상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와 한미 금리 역전 폭이 최대 1.50%포인트까지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졌음에도 환율이 떨어지면서 통화 당국의 정책 여력이 확보됐다는 평가다. 환율 하락으로 외환보유액이 두 달 만에 90억 달러 넘게 증가하고 지난해 12월 수입물가지수가 6.2% 떨어지는 등 경제·금융 전반을 짓누르던 고환율의 부담을 덜었다.
미 달러화 가치는 지난해 말 국내외 주요 기관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올해 3분기 이후에나 달러 약세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미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DXY)는 이날 101.75까지 떨어지면서 지난해 6월 이후 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고점이었던 9월 27일(114.1) 대비로는 10% 이상 하락했다. DXY는 1973년 3월(100)을 기준으로 오르면 강세, 내리면 약세를 의미한다.
달러화 가치가 하락한 것은 미국의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둔화 등으로 긴축 속도 조절 기대감이 커진 영향도 있지만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 유로화 등 주요 통화들이 일제히 강세 전환한 것도 반영된 결과다. 유로화가 천연가스 가격 하락으로 강세 전환한 데다 위안화도 중국 경제 회복 기대감으로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일본 엔화는 이달 6일 달러당 133.4엔에서 16일 127.9엔으로 열흘 만에 4% 넘는 절상 폭을 기록했다.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남은 변수는 18일로 예정된 BOJ의 금융정책회의다. 시장에서는 일본 내 물가 상승으로 BOJ가 금융정책을 추가 조정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면적인 긴축 전환 가능성은 여전히 낮지만 10년 금리의 변동 폭을 추가 확대하고 마이너스 금리를 폐지하는 등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엔화가 유로화 등과 함께 강세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BOJ 회의 결과에 따라 엔·달러 추가 하락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며 “엔화·위안화 동반 강세에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주식 순매수가 확대되면서 원·달러 환율도 1230원대로 안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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