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는 식량 스와프는 식량 수급 위기에 실질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한국의 사상 첫 국가 간 협력 체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13년 발효된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및 한중일 비상쌀비축협정(애프터·APTERR)’ 역시 형식상 스와프이기는 하나 교환 품목이 쌀뿐이라 쌀 공급 과잉으로 골머리를 앓는 한국에는 의미가 크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 추진되는 식량 스와프는 교환 품목이 밀과 콩 등 국내 수요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작물이라는 점에서 각별하다. 전쟁이나 기후변화로 인한 작황 불안정으로 식량 수입에 차질이 생길 때 긴요하게 작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2020년 기준 밀 자급률은 0.5%, 콩은 7.5%에 불과하다.
스와프 체결 국가로 검토되는 아르헨티나와 에티오피아·케냐 등이 남반구에 위치하는 국가라는 점도 눈에 띈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는 밀 수입의 56%를 미국과 캐나다 등 북반구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 보통 북반구에서 이상기후가 발생해 작황이 불안정해질 경우 남반구는 상대적으로 괜찮은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의 주 수입국이 모여 있는 북반구에서 작황이 악화해 수입에 차질이 생기면 남반구의 작황은 나쁘지 않아 스와프를 통해 무리 없이 식량을 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 세계가 동시에 기상이변으로 작황 불안정을 겪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그런 점에서 남반구에 있는 남미와 아프리카 국가와의 협력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미와 아프리카 등은 농업 공적개발원조(ODA)에 대한 수요가 크다는 점도 스와프 체결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요인이다. 농업ODA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는 한국 정부에도 나쁘지 않은 거래다. 한국의 농업ODA 사업비는 2019년 664억 1000만 원에서 2023년(정부 제출 예산안 기준) 917억 원으로 4년 만에 38% 늘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아프리카를 포함한 개발도상국에 대한 ODA 확대를 국정 과제로 제시했으며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에는 ODA를 통한 농업 현대화를 약속한 바 있다.
ODA로 상대국의 농업 생산량이 늘어나면 유사시 한국에 공급할 수 있는 물량도 추가로 확보된다는 장점도 있다. 민간 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ODA로 농업 인프라를 갖추고 우리 기술이 제공되면 작물 생산이 눈에 띄게 늘어날 수 있다”며 “국내 자급 물량을 넘어선 잉여량이 많아질수록 한국에 줄 수 있는 물량이 많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식량 스와프와 해외 진출 농기업 지원 등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안정적인 식량 공급망 확충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곡물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조만간 발표될 지난해 곡물 자급률은 18%대 후반으로 사상 첫 10%대로 내려앉을 것이 확실시된다. 민간 연구원 관계자는 “좁은 국토 면적, 농촌 고령화 등을 고려하면 자급률 제고보다는 공급망 확충이 식량 안보 확보를 위한 현실적 방법”이라며 “국가 간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조속히 협의를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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