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로 한국은행이 긴급 발표한 6조 원 규모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조치가 한 달 만에 가동됐다. 다만 단기자금시장 경색이 심각해지면서 돈을 급히 마련한 것이 아니라 오는 24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통화정책 불확실성에 대비해 자금을 미리 확보해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한은은 이날 오전 11시 일시적 유동성 위축 완화를 목적으로 하는 14일물 RP 매입을 실시했다. 입찰 결과 3조 6000억 원이 응찰해 당초 예정했던 2조 5000억 원이 낙찰됐다. 이로써 한은이 예정한 RP 매입 잔액은 3조 4000억 원이 남았다. 다만 전액 환매가 이뤄지면 잔액은 다시 6조 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한은 관계자는 “이번에 공급되는 유동성은 통화안정계정, 정례 RP 매각 규모 확대로 대응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지난달 27일 금통위에서 단기금융시장 안정화 조치로 6조 규모의 RP 매입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로 도입했던 무제한 RP 매입 당시엔 주로 91일물을 활용했는데 이번엔 단기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14일물을 매입했다. 따라서 이번 RP 매입의 환매 일자는 14일 뒤인 12월 5일이다. 또 고정금리로 응찰금액 전액을 낙찰하지 않고 복수금리 경쟁입찰로 예정금액 이내로만 낙찰했다.
한은이 단기금융시장 안정화 조치의 일환으로 내놓은 대책이지만 입찰 대상기관인 대형 증권사들은 자금난 극복보다는 3일 앞으로 다가온 금통위를 대비해 RP 매입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14일물의 평균 낙찰금리는 3.29%로 1일물 콜금리(18일 기준 3.0%)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번 금통위에서 금리 인상이 이뤄지면 콜금리가 높아지기 때문에 14일물을 미리 받아 놓는 것이 이득이라는 계산이다.
금통위는 이달 기준금리를 3.0%에서 3.25%로 25bp 올릴 가능성이 큰 가운데 미국의 최종금리 상향 조정 등을 봤을 때 간담회 중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발언이 나올 수 있다. 금통위가 3.50%로 50bp를 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금리가 금통위 전후로 갑작스럽게 뛰어오를 수 있는 만큼 증권사들이 자금을 분산 확보해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결과에 상관없이 이번 금통위는 금리 상승 재료”라며 “50bp 인상 결정이 나오면 현 상황에서 추가적인 ‘빅스텝’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것이고, 25bp 인상에 그친다면 매파적인 기자회견에 주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증권사들이 운영자금이 부족해 이번 RP 매입에 응찰한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고 있다. 1일물 자금시장이 원활할 뿐만 아니라 기업어음(CP)도 순발행되는 등 자금시장 경색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진 않았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중단기적으로 RP 금리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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