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정상회담을 하는 날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페터르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도 회동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네덜란드 정상과 양국 최대 반도체 기업의 수장이 동시에 만나면서 첨단 칩 공급망 협력 관계가 공고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16일 복수의 재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 회장과 베닝크 CEO는 17일 오후 회동을 위한 막바지 조율을 하고 있다. 구체적인 만남의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비슷한 시간대에 윤 대통령과 뤼터 총리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다. 이 회장도 뤼터 총리를 만날 가능성이 있다.
양국 정상과 이 회장, 베닝크 CEO 간 회동이 한국에서 동시에 이뤄지는 것은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 격화로 정부와 기업 모두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네덜란드 ASML이 만드는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가 첨단 반도체 생산의 핵심인 점을 고려하면 공급망에 대한 이들의 논의는 상당히 중요하다.
윤 대통령과 뤼터 총리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과 네덜란드 간 굳건한 반도체 동맹을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윤 대통령은 3월 당선인 시절에 뤼터 총리와 통화하고 6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렸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도 그와 만나 반도체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6개월 동안 세 차례 뤼터 총리와 만난 만큼 심층적인 반도체 협력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윤 대통령은 ASML의 EUV 노광 기술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 한·네덜란드 정상회담에서 뤼터 총리에게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업체 ASML 같은 네덜란드 기업의 한국 내 투자가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한 바 있다.
이 회장 역시 베닝크 CEO에게 끈끈한 EUV 기술 협력과 국가 간 공조에 관한 메시지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6월 유럽 출장 때 뤼터 총리와 만나 한국과 네덜란드 간 반도체 공급망 동맹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같은 출장에서 그는 ASML 본사를 찾아 베닝크 CEO와 함께 차세대 EUV 장비인 하이뉴메리컬어퍼처(NA) 장비 생산 설비를 둘러봤다.
15일부터 방한 일정을 수행 중인 베닝크 CEO 역시 한국의 EUV 공급망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16일 베닝크 CEO는 ASML의 화성 클러스터 ‘뉴캠퍼스’ 착공식에 참석했다. 착공식 전날 열린 ASML 기자 간담회에서 베닝크 CEO는 “향후 한국에 대한 연구개발(R&D), 생산 설비 구축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회장과의 두터운 친분도 언급했다. 그는 이 회장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눴느냐는 질문에 “사업 환경에 대해 광범위한 대화를 한다”며 “수년 동안 인연을 쌓아왔기 때문에 사적인 이야기도 한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회장과 베닝크 CEO와의 회동 여부에 대해 “구체적인 이 회장의 일정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이 회장은 17일 오후 6시~7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만나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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