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난해 국제특허(PCT)출원 건수에서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미·중 패권 전쟁의 주요 쟁점 중 하나가 경제·안보를 위한 특허 등 지식재산( IP)이라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마냥 기뻐할 일이 아니다. 국내 전체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기관(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25개 기준)의 기술이전 수입은 연간 각각 1000억 원대 초반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대학의 건당 특허 수입이 미국 대학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학과 출연연에 ‘특허를 위한 특허’가 적지 않은 셈이다. 실제 미국 내 건당 특허 수입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3만 4000달러(2019년 기준 세계은행 통계)로 독일(20만 1000달러), 일본(7만 9000달러), 미국(6만 5000달러)은 물론 중국(4만 9000달러)에도 뒤졌다.
이는 그동안 정부 연구개발(R&D) 과제 평가가 논문 수와 피인용도, 특허 숫자를 많이 따진 게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대학이나 출연연에서 논문이나 특허를 양산하게 정부가 부채질한 셈이다. 여기에 기업조차 대부분 특허 라이선싱 등 수익화 노력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대학 교원 평가와 정부 R&D 과제 평가에서 논문 수와 피인용지수 등에 주안점을 둬 임팩트가 큰 특허를 만들 수 있는지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산학연 전반적으로 특허의 질적 관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한류현상으로 19억달러 가까운 저작권 흑자를 보임에도 특허를 비롯한 산업재산권 적자가 35억달러 이상 달해 전체 지식재산(IP) 적자가 18억 7000만달러(2020년)나 되는 현실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R&D 예산 비중이 2020년 4.81%로 이스라엘과 함께 세계 1,2위권을 다툰다는 점에서 이제는 국가 R&D 시스템의 대전환을 꾀하자는 것이다. 주영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기혁신본부장은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의 중요성이 커지며 기술 탈취나 산업스파이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는 것에 맞춰 특허 수익화에 대해서도 역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9월4일 ‘제5회 지식재산의 날’을 맞아 국가적으로 산학연의 IP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과제를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 위해 R&D 기획단계부터 기존 특허정보와 시장 동향을 분석한 후 R&D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IPR&D 전략이다. 대학과 출연연에서 ‘논문을 위한 논문’ ‘특허를 위한 특허’가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은 ”출연연의 특허 양산 문제를 고치기 위해 KIST에서부터 특허 숫자를 평가 항목에서 뺐다“며 ”연간 특허 출원건수가 802건(작년 6월 기준)에서 1년 만에 598건으로 줄었으나 오히려 특허 활용과 영향력은 커졌다”고 소개했다.
대학과 출연연의 기술이전조직(TLO) 역량도 대폭 높여야 한다. 미국 등 IP가 발달한 나라처럼 이들 TLO 조직에 민간 전문가를 대거 영입하고 권한을 줘야 한다.
정부 R&D 예산의 3% 수준에 불과한 기술사업화 예산도 확대해야 한다. IP 기반 벤처·스타트업 활성화를 꾀하는 것도 숙제다. 특허를 기반으로 사업자금을 융통하는 ‘IP 금융’도 내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국가정보원, 경찰청, 특허청 등 24개 부처·청에 흩어져 있는 IP 정책과 사업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의 역할도 필요하다. 기술·산업, 제품·서비스, 기술·문화의 융합이 가속화하는 흐름에 맞춰 산업재산권과 저작권의 시너지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IP 창출의 핵심 요소로 떠오른 인공지능(AI)이나 데이터 활용, K-컬처, 메타버스 등의 분야가 기존 법·제도로 인해 위축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와 IP 선도국과 의제협력도 강화하고 우리의 표준특허 점유율도 높여야 하는 점도 과제로 꼽힌다. 지난 6년간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우리나라 국가핵심기술 유출 시도가 약 21조 4,474억원 규모(국가정보원)라는 통계도 있어 IP 보호에도 역점을 둬야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 체계가 도입됐으나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업도 영향력이 큰 IP를 창출한 연구원에게 충분한 보상을 팔 필요가 있다.
결국 이런 과제가 실현되지 않으면 정부가 지난해 ’제3차 국가지식재산 기본계획(2022∼2026년)을 통해 2026년까지 IP 무역수지 흑자를 달성하겠다는 포부도 쉽지 않을 수 있다. 민경화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LG화학 IP 총괄 전무, 한국·미국 변호사)은 “주요 국가의 지도자들은 국가의 흥망성쇠와 미래 경제안보 경쟁력이 IP 전략에 좌우된다고 인식하는 듯 하다”며 “우리도 AI·바이오·양자기술 등 국가전략기술 관리와 IP의 효율적인 관리·사업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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