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업들은 좌불안석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00일이 지났지만 기업을 둘러싼 국내외 경영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잔뜩 기대를 걸었던 법인세율 인하나 규제 완화도 말만 무성할 뿐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노조의 불법행위에도 공권력은 뒷짐만 지고 있어 “정권 교체로 달라진 게 뭐냐”는 한탄이 쏟아진다. 기업인들이 대통령 지지율만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국민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종합부동산세·재산세 등 보유세 부담을 낮추는 세제 개편은 구체적으로 확정된 게 없다. 1주택자의 공제액을 14억 원으로 올리고 일시적 2주택자에게 1주택자 혜택을 주는 특례 조치도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올해 종부세를 얼마나 내야 하는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미증유의 복합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수많은 경제 대책을 내놓았다. 민생 안정 100대 프로젝트, 물가 안정 대책, 임대차 시장 안정 방안, 세제 개편안, 추석 민생 안정 대책 등이 잇따랐다. 하지만 국민 사이에서는 정책 변화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다. 국정의 큰 그림과 비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민간과 시장 위주의 정책 방향 자체는 바람직하다. 윤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과 동시에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성장’이라는 경제정책 기조를 내세웠다. 법인세율 인하, 규제 혁신, 반도체 산업 육성, 탈원전 폐기 등도 내놓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국정 비전을 위해 어떤 공약이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 국민은 잘 모르고 있다. 반면 대다수의 국민은 고물가와 부채 더미에 짓눌려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열심히 뛰고 있다는 정부 얘기가 제대로 먹히기 어려운 구조다. 최근 내놓은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은 대표적인 사례다. 거창한 방향과 목표만 제시됐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나 시기 같은 알맹이가 빠졌다. 부동산 대책의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시장의 눈치만 살피느라 뜨뜻미지근한 정책만 쏟아낸다는 것이다.
국민이 윤 대통령을 선택한 것은 과거 정권과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무너진 공정과 상식을 되찾고 하루빨리 경제를 살리라는 주문이었다. 이는 새 정부의 최대 지지 기반이자 국정 동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 정부는 정권 초기의 금쪽같은 시기를 인사 논란과 내부 갈등으로 허비하고 말았다. 이제는 반성과 쇄신을 통해 국민에게 구체적 성과를 보여야 할 때다. 어떤 좋은 정책도 국민의 폭넓은 공감을 얻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그러자면 더 이상 전 정부 탓, 야당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집값을 다락같이 올려놓고 반성은커녕 투기꾼 탓으로 돌려버린 전 정부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현 정부의 시대적 소명인 교육·연금 개혁을 주도해 나갈 교육·보건복지부 장관 인선도 서둘러야 한다. 수장의 지시가 중요한 공직 사회를 움직이려면 인사가 만사라는 교훈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 회동에서 “이제는 내각과 대통령실이 심기일전해 국정 과제 등 국민께 약속한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며 성과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이 체감할 성과는 말이 아닌 실천이 앞서야 의미가 있다. 그러자면 한눈팔지 말고 오직 경제와 민생을 챙기는 데 집중해야 한다. 정부가 먼저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면서 기업과 노동계, 국민 모두에게 고통을 분담하자고 호소해야 한다. 거대 야당을 더 자주 만나 설득하고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입법 활동을 지원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지금은 국민에게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위기를 돌파할 정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국민은 새 정부가 ‘일 잘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가 누구나 체감할 만한 가시적 성과를 내주기를 바라고 있다. 세상은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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