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 경기가 악화해서 운임이 급락하면 해운사는 비싼 용선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지만 우리 선주사가 있다면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습니다. 금융·해운·조선소 중심의 다양한 선주사 형태 중 우리는 하이브리드 형태의 새로운 ‘한국형 선주사’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이 19일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 서울지원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현재 HMM(011200)이 해운업 호황기를 누리고 있지만 불황에도 시스템에 따라 사업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정책 펀드를 현재 21억 달러 규모에서 36억 달러까지 확대하고 이를 위험도가 높은 후순위 투자에 집중해 민간 투자의 마중물로 활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HMM이 불황기에도 사업을 해나갈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해수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한국형 선주사 육성이다. 해수부는 해진공에서 2026년까지 선박 최대 50척을 매입해 공공 선주 사업을 추진하고 민간 선주사를 육성하기 위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조 장관은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유동성이 많이 풀린 데다 물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커지고 있고 화주들도 ‘배에 대한 권리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서 “해진공이 먼저 공공 선주 사업을 추진하되 ‘선박 조세 리스 제도’ 등 민간의 투자 유인을 만들면 한국형 선주사 육성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형 선주사가 등장하면 다양한 부가 산업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다. 가령 용선을 위해 배의 엔진·발전기 상태, 항해 장비 종류 등을 평가하고 보증하는 산업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조 장관은 “그렇게 되면 선박 보험이나 감정 사업도 커질 수밖에 없고 용선이 끝난 배에서 내린 외국인 선원들을 위한 K팝 콘서트 등 관광 산업도 발달할 수 있다”며 “이런 부가적인 산업의 영향력이 크다고 보기 때문에 임기 내 법 개정 등으로 제도적인 틀을 만들어 반드시 선주사 육성을 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해수부는 자율운항 선박, 친환경 선박 등 미래 선박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기술 개발과 보급도 지원하고 있다.
2025년까지 액화천연가스(LNG) 등 저탄소 선박 기술을 고도화하고 2030년까지 수소·암모니아 등 무탄소 선박 기술 확보를 추진할 계획이다. 또 2025년까지 선원 없이 원격 제어를 할 수 있는 ‘레벨3’ 자율운항 선박 기술을, 2030년까지 ‘레벨4(완전 무인 자율운항)’ 기술 확보를 추진하기로 했다. 광양항과 부산항 진해신항을 최첨단 스마트 항만으로 구축해 항만 물류 산업의 부가가치도 높인다.
조 장관은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한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해상풍력발전 사업 확대에는 신중론을 폈다. 조 장관은 “해상풍력발전에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면적이 필요하다”며 “얼마 전에 계산을 해봤더니 전남 신안에 계획대로 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하려면 가로 11㎞, 세로 11㎞의 면적이 필요한데 어떻게 보면 어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우려했다. 어업인들은 ‘해상풍력발전 사업 추진 과정에서 어업인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해양 환경과 수산 자원 등에 미치는 영향을 철저히 검토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기존 사업의 입지를 전면 재검토해달라’는 주장도 있다. 이에 해수부는 어업인 요구 사항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 부처와 함께 법·제도를 정비해 나가고 있다.
조 장관은 “민간 사업자들이 ‘바람 좀 분다’는 곳에는 무조건 풍향계부터 꽂고 있어 현재 해상풍력발전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놓은 풍향계만 184개소”라며 “풍향계를 꽂을 때는 큰 면적을 차지하지 않고 1년 지나면 철거한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는 인허가를 거부하기가 어려운데 1년간 풍향계에서 데이터를 뽑고 나면 전기사업 발전까지는 쭉 허가가 나버린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민간이 이렇게 무분별하게 해상풍력발전을 추진하는 것은 글로벌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조 장관의 판단이다. 그는 “해상풍력발전단지를 건립한다고 했을 때 그곳의 수산업뿐 아니라 해상 교통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정부가 다 검토를 한 뒤 적정 입지를 정해주고 입찰이나 수의계약을 하는 것이 유럽 모델”이라며 “해상풍력발전 사업이 질서 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정부 주도로 수산업, 해양 환경, 해상 교통 등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적합 입지를 발굴하는 ‘계획 입지 제도’ 도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상풍력발전 사업을 신속화하기 위해 지난해 5월 발의된 ‘풍력발전 보급 촉진 특별법’을 수정·보완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공유수면 점용·사용 허가 단계에서 기존에는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하도록 했지만 이를 ‘어업인’ 의견 수렴으로 구체화한 것도 해수부의 성과다. 전북·전남(신안)·경남 등 지방자치단체 주도로 구성·운영 중인 ‘민간협의회’에도 해당 지역의 수협이 참여하도록 했다.
조 장관은 “발전 사업 허가를 받은 사업자들이 어민들과 이익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 뭘 해줄 수 있는지, 협의회는 어떻게 꾸릴 것인지 지속적으로 논의 중”이라며 “가령 주민과 어업인이 지분 투자, 채권 투자 등으로 직접 사업에 참여하고 사업자는 발전 수익을 공유하는 방식의 이익 공유 모델을 개발해 어업인 권익 보호를 추진해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장관은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장 출신이라는 경력을 살려 해양 신산업 육성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해수부는 지난해 3조 5000억 원 규모였던 해양 신산업 국내 시장 규모를 2027년까지 15조 원 규모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디지털 해양 교통 정보 서비스 등 해양 교통 4대 신산업의 세계 시장 매출을 2027년까지 13조 원으로 확대하고 국내 해양 레저 관광 시장을 9000억 원 규모로 성장시킨다는 계획이다.
조 장관이 해양 신산업에서 특히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해양 바이오 산업이다. 조 장관은 “20년 전부터 시작한 육상 바이오 분야에서는 대부분의 물질을 사용해봤지만 해양 바이오 분야는 개발의 여지도 많고 소재로서 인체 적용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면서 “소재를 대량 생산해야 하는 만큼 양식업 등 국내 어업이 한 차원 발전하는 계기도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민간의 관심도 높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6600억 원 규모였던 국내 해양 바이오 산업 시장 규모를 2027년 1조 2000억 원 규모까지 육성하는 것이 해수부의 목표다. 조 장관은 해양 심층수로 만든 ‘독도 소주’를 예로 들며 “증류식 소주를 이 가격에, 이 정도 품질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는데 어떤 음식점들은 해양 심층수에서 나온 소금만 고정적으로 쓸 정도로 해양 심층수 부산물의 가치가 높다”며 “해양에서 발굴한 소재가 화장품·의약품 분야에서 그만큼 활용도가 높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수부는 ‘2030 부산 세계박람회(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박람회를 유치할 경우 행사가 부산항 북항 재개발 1단계 구역과 앞으로 진행될 재개발 2단계 구역에서 개최되기 때문이다. 부산 엑스포가 개최될 행사 부지 조성 역할을 해수부가 맡고 있는 셈이다.
조 장관도 부산 엑스포 유치로 분주하다. 그는 지난달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조대식 SK수펙스협의회 의장,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이명우 동원산업 사장과 함께 피지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피지에서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정상회의를 계기로 모인 10개 세계박람회기구(BIE) 회원국 최고위급 인사들이 부산 엑스포를 ‘기후변화 해결책을 모색하는 최초의 세계 박람회’로 만들겠다는 설명에 큰 관심과 공감을 표명했다”면서 “일부 국가는 공식적으로 부산을 지지하겠다고 밝혔고 상당수 국가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전했다.
He is…
△1966년 부산 △부산 대동고 △고려대 법학 △워싱턴대 로스쿨 LL.M.과정 수료 △제34회 행정고시 합격 △1992~1994년 통일원·남북회담사무국 △1994~2003년 국무총리비서실 △2003~2005년 해양수산부 연안계획과장 △2005~2006년 부산지방해양수산청 환경안전과장 △2006~2007년 부산지방해양수산청 항만물류과장 △2007년 해양수산부 물류제도팀장 △2008년 대통령실 국토해양비서관실 선임행정관 △2010~2011년 2012여수세계박람회조직위원회 문화학술본부장 △2011~2012년 인천지방해양항만청 인천항건설사무소장 △2012~2015년 주영국대사관 공사참사관 △2015~2016년 해양수산부 해사안전국장 △2016~2017년 부산지방해양수산청장 △2017~2018년 해양수산부 해양정책실장 △2018~2021년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장 △2022년~ 해양수산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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