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세계 최초로 양산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반 3㎚(나노미터·10억분의 1m) 반도체 공정 제품을 공식 출하했다. 차세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산업에서 대만 TSMC를 따라잡고 1위로 올라설 주춧돌을 놓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25일 경기 화성 공장 내 극자외선(EUV) 전용 V1 라인에서 차세대 트랜지스터인 GAA 기술을 적용한 3나노 파운드리 제품 출하식을 열었다. 이 행사에는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경계현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 사장을 비롯해 임직원, 협력사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GAA는 기존 핀펫(FinFET)보다 칩 면적을 축소하고 소비 전력도 줄인 기술이다. 당초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공언한 올 상반기 3나노 반도체 양산 계획에 의문을 표했으나 보란 듯이 약속을 지켰다. 이는 각각 올 하반기, 내년 하반기를 양산 목표 시점으로 내세운 TSMC·인텔보다 한참 빠른 일정이다.
이 기술은 특히 지난달 20일 삼성전자 평택 공장을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시제품에 서명하면서 유명해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당시 이 제품을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에게 직접 소개했다.
경 사장은 이날 행사에서 “삼성전자가 이번 제품 양산으로 파운드리 사업에 한 획을 그었다”고 자평했다. 이 장관은 “치열한 미세 공정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삼성전자와 시스템반도체 업계,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계가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25일 양산품을 본격 출하한 삼성전자의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반 3㎚(나노미터·10억분의 1m) 반도체 공정 기술은 미국 인텔은 물론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 1위인 대만 TSMC보다도 한 차원 높은 기술로 평가된다. 공식 출하식을 거쳐 ‘실제 고객에게 납품하는 게 맞느냐’는 경쟁사들의 견제를 완전히 불식하고 2030년 시스템 반도체 분야 초격차 1위를 향한 초석을 놓았다는 진단이다. 안정적인 수율(결함이 없는 합격품의 비율), 고객사 확보만 뒷받침된다면 업계 판도를 단번에 바꿀 ‘게임체인저(상황 전개를 완전히 바꾸는 제품)’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3㎚ 반도체 공정은 기존 5㎚, 4㎚보다 미세하고 정확하게 회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이다. 특히 트랜지스터의 모든 면에서 전류가 흐르는 GAA 제조 기술은 3개 면에서 전류가 흐르는 기존 핀펫(FinFET) 기술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게 특징이다.
삼성전자는 3나노 GAA 1세대 공정이 기존 5나노 핀펫 공정 대비 전력은 45% 절감되고 성능은 23% 향상된다고 설명했다. 성능이 좋아지는 데 반해 면적은 16%나 작다. 삼성전자는 GAA 트랜지스터 구조를 2000년대 초반부터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 기술을 2017년부터 3나노 공정에 적용한 끝에 마침내 양산까지 성공했다.
정기태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기술개발실 부사장은 이날 경기 화성공장 내 극자외선(EUV) 전용 V1 라인에서 열린 GAA 기반 3나노 파운드리 제품 출하식에서 이 회사가 파운드리사업부, 반도체연구소, 글로벌 제조·인프라 총괄 등의 협업으로 어떻게 기술의 한계를 극복했는지 설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삼성전자의 이번 성과가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시스템 반도체 기업 등의 공동 업적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첨단 반도체 제조 시설은 국가 안보 자산”이라며 3나노 반도체 양산 성공이 경제안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기여하는 바가 클 것 같다고 기대했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 사장은 “핀펫 트랜지스터가 기술적 한계에 다다랐을 때 새로운 대안이 될 GAA 기술의 조기 개발에 성공한 것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혁신적인 결과”라고 평가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정부는 최근 발표한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을 바탕으로 민간 투자 지원, 인력 양성, 기술 개발, 소부장 생태계 구축에 전폭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GAA 기반 3나노 반도체 공정을 고성능컴퓨팅(HPC)에 처음 적용하고 이후 모바일 시스템온칩(SoC) 등 다른 제품군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화성 공장뿐 아니라 평택 공장에도 GAA 기반 3나노 파운드리 공정 제품의 양산을 도입하기로 했다. 현재 화성과 평택 캠퍼스에는 첨단 파운드리를 구현할 수 있는 EUV 공장 V1, V2가 있다.
업계는 이번 출하식을 지렛대로 삼성전자가 TSMC의 파운드리 시장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전망했다. TSMC가 올 하반기 양산하겠다고 공약한 3나노 반도체는 GAA가 아닌 기존 핀펫 기술 기반이다. 삼성전자가 당장의 점유율 확대보다 최첨단 기술 개발에 더 공을 들인 이유다. 대만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1분기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전 분기 52.1%에서 53.6%로 증가한 반면 삼성전자는 18.3%에서 16.3%로 떨어졌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국내 반도체 장비 업체 원익IPS의 이현덕 대표는 “삼성전자와 함께 3나노 GAA 파운드리 공정 양산을 준비하며 우리 회사 임직원의 역량도 한층 더 강화됐다”고 밝혔다. 국내 반도체 설계(팹리스) 업체 텔레칩스의 이장규 대표는 “텔레칩스는 삼성전자의 초미세 공정을 활용한 미래 제품 설계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삼성전자는 국내 팹리스가 제품 설계 범위를 넓혀갈 수 있도록 초미세 파운드리 공정을 적극 제공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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