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특수 효과를 누렸던 화학 제품 수출 규모가 급감하고 있다. 특히 의료용 장갑 소재로 활용되는 NB라텍스는 전 세계적인 엔데믹 전환의 영향으로 수요가 크게 줄었다. 지난해 대규모 증설에 나선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과잉 공급의 부메랑을 맞았다는 분석이다. 고유가 장기화로 비용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실적 악화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13일 업계 및 삼성증권에 따르면 국내 석유화학 회사들이 해외로 NB라텍스를 수출하는 금액은 올해 6월 한 달간 3100만 달러(약 407억 원)로 지난 해 같은 달(1억 400만 달러) 대비 70% 감소했다. 같은 기간 수출 중량은 4만 9179톤에서 3만 397톤으로 약 38% 줄었고 단기 스프레드(제품 가격에서 나프타 가격을 뺀 수익성 지표)는 75%가량 하락했다. 화학 업계 관계자는 “올 들어 플라스틱 제품의 전반적인 시황이 악화한 가운데 NB라텍스의 부진은 더욱 심각한 편”이라고 말했다.
NB라텍스의 시황이 고꾸라진 데는 코로나19 특수 효과가 끝난 데 따른 영향이 크다. 이 제품은 부타디엔을 주원료로 하는 합성고무 소재로 니트릴 장갑의 핵심 원료로 사용된다. 니트릴 장갑은 기존 천연고무 장갑에 비해 강도와 내화학성이 뛰어나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병원에서 사용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 보급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서 NB라텍스 수요도 둔화됐다.
문제는 글로벌 NB라텍스 시장을 이끄는 국내 업체들이 지난해부터 대규모 증설을 추진했다는 점이다. 세계 1위 사업자인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하반기 울산 석유화학공단 내 NB라텍스 공장에 2560억 원을 투자키로 결정했다. 연간 생산 능력은 기존 71만 톤에서 증설이 완료되는 2023년 말 95만 톤까지 확대된다. 세계 3위 수준인 LG화학(051910)도 한국·중국·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글로벌 생산 체제를 완성해 2025년까지 연간 생산 능력을 100만 톤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과잉 공급 우려에 직면한 두 업체가 기존 투자 계획을 두고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NB라텍스 등 기존 화학 제품보다는 첨단소재 투자 비중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LG화학은 배터리 소재를 비롯한 3대 신성장 사업 확대와 연구개발을 위해 올해부터 연간 4조 원 이상 투자한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이를 통해 전지 소재 사업 매출을 지난해 기준 1조 7000억 원 수준에서 2030년 21조 원까지 12배 이상으로 대폭 확대하겠다는 목표다. 금호석유화학은 2조 7000억 원을 투자해 전기차 소재를 포함한 미래 신사업을 집중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차세대 신소재 탄소나노튜브(CNT)가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인 플라스틱 제품은 시황에 따른 실적 변동 폭이 극심한 반면 전기차 등 유망 산업의 비중이 높은 첨단소재는 수요가 늘고 있어 시황이 꺾일 것이라는 우려가 적다”며 “주식 저평가에서 탈피하려면 새로운 소재 분야에 대한 투자 비중을 지속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