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계가 40년 만에 맞은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저축해놓은 돈까지 소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으로 치면 ‘예비비’에 해당하는 저축이 줄어드는 것은 그만큼 가계의 소비 여력이 감소한다는 의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 시간) 시장 조사 업체 무디스애널리틱스를 인용해 올 5월 미국 가계의 소비와 세금을 제외한 저축률이 5.4%로 1년 전(10.4%)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씀씀이를 확 줄여 저축률이 34%까지 치솟았던 2020년 4월과 비교하면 6분의 1에 불과한 수치다. WSJ는 “(5월 저축률은) 최근 10년간의 평균치보다도 낮다”며 “고물가로 지금까지 가계가 저축에서 쓴 돈의 규모만 총 1140억 달러(약 150조 원)”라고 전했다.
이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미국인들이 저축할 여력이 낮아졌음은 물론 그동안 모은 돈을 까먹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지난해 3월 미국 최저 소득층의 은행 잔액은 팬데믹 전인 2019년 말보다 126% 늘었지만 올 3월 말에는 65%로 거의 반 토막이 났다. 팬데믹 기간에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지급된 정부 지원금이 팬데믹 완화와 더불어 끊긴 것도 가계 소득을 악화시킨 원인이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미국 소비자들이 각자의 계좌에 6개월에서 최대 9개월분의 소비 여력을 가졌다고 추산한 바 있다. 그러나 물가 상승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하면 ‘여윳돈’으로도 얼마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블룸버그가 추산하는 6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연간 상승률은 8.8%로 41년 만의 최고였던 5월(8.6%)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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