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로서는 가상자산의 지위가 불분명해 국제 회계기준이 도출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겠지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가상자산의 규모나 리스크에 대해 투자자들이 파악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김의형 한국회계기준원장은 암호화폐를 포함한 가상자산에 대한 회계 처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암호화폐 국제 기준이 제정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는 만큼 국내에서 가능한 대안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김 원장의 지론은 암호화폐의 공시 기준을 합리적인 선에서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암호화폐는 가격 변동 폭이 큰데 현재는 ‘무형자산’으로 간주해 시가가 매입가보다 떨어지면 회계에 반영하지만 오를 경우는 반영하지 않고 있다”며 “주식·채권은 가격이 오르면 이를 평가해 반영하는데 암호화폐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가 불분명해서다. 김 원장은 “암호화폐를 전통적인 무형자산과 같은 범주로 보기 때문에 가격 변동 내역을 제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자산의 하나로 봐야 하는데 새로운 형태의 암호화폐가 계속 나오는 상황이어서 암호화폐가 안정기에 접어들 때쯤에야 회계기준이 나와 제대로 된 자산으로 인정받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회계는 회사의 사정을 정확하게 보여줘야 하는데 기준이 없다고 회계 처리를 무작정 미뤄놓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별도 기준을 마련해서라도 기업의 암호화폐 현황을 투자자에게 알려줄 방법이 필요하다”며 “가령 보유하고 있는 암호화폐의 성격과 수량을 주석이라든가 공시하는 식의 대안은 가능하지 않겠나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회계기준원이 암호화폐의 회계기준 제정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상장사의 암호화폐 보유 이슈 때문이다. 김 원장은 “미국과 유럽은 여태 암호화폐의 회계기준 제정에 수동적인 입장을 보였다”며 “개인들의 암호화폐 보유는 많지만 상장사들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내 사정은 다르다. 코스닥 상장사들이 암호화폐거래소 시장에 뛰어들며 회계 이슈가 생겼다. 코스닥 상장사 티사이언티픽은 올 4월 한빗코 운영사 플루토스디에스 주식 10만 6218주(약 240억 원) 취득으로 지분 60.36%를 확보해 최대주주에 올랐다. 또 다른 코스닥 상장사인 대명소노시즌은 지난해 12월 두나무 주식 1만 주를 50억 원에 취득했다. 김 원장은 “부분적 차원에서라도 암호화폐 회계기준이 마련돼야 하는데 재무제표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공시를 통해서라도 공개해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소신”이라고 강조했다.
정리=서종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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