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기업이 기술 채택 논의 시작 단계부터 참여합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산업체, 대학 연구소와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산업체·대학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손대지 않습니다.”
최상혁 나사 랭글리연구소 수석연구원은 27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우주 강국이 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와 민간, 정부 기관, 대학 간 확실한 역할 분담을 꼽았다.
최 수석연구원은 “미국에서는 나사가 계획·설계·검증 및 승인 실험을 하지만 제작은 산업체 몫이기 때문에 기업이 사업 시작 단계부터 참여한다”며 “기업이 사업 깊숙이 관여하게 되면 인적 훈련 효과 등 여러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가 기술 개발을 완료한 뒤 기업이 기술을 이전받는 방식이 고착화돼 있어 한국이 민간 우주개발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사업 추진부터 실행까지 전 과정이 국책 연구 중심인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서는 나사·기업·대학 간 역할이 명확히 구분돼 있다. 최 수석연구원은 “나사 업무는 산업체나 대학이 할 수 없는 규모의 사업, 이윤 추구와 관련이 없는 프로젝트로 정해지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기초과학은 대학이, 제작은 산업체가, 계획·설계·검증 및 승인 실험, 통제, 데이터 관리는 나사가 맡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사가 경쟁국에 없는 실험 시설을 갖추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설계하면 산업체는 들어와 제작을 맡고 이 제작물을 나사가 테스트하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민간이 우주개발을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를 맞아 미국 정부는 굵직한 프로젝트를 민간에 개방하는 한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 간 경쟁도 유도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많은 산업체가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수 입찰 계약을 허용하기도 한다. 민간 우주여행 산업을 주도하는 미국 기업 ‘스페이스X’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 수석연구원은 “연방정부와 의회, 주 정부가 정부 규약을 고쳐서 이러한 사업 풍토를 조성하는데 대표적인 예로 스페이스X를 들 수 있다”며 “원래 우주인과 물자를 우주정거장에 실어나르는 일은 ULA(United Launch Alliance·우주 발사 서비스 업체)가 독점했지만 규정을 바꿔 스페이스X도 팰컨9(Falcon9·재사용 로켓)을 이용해 해당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해줬다”고 설명했다.
최 수석연구원은 기업의 우주개발 참여를 늘리기 위해서는 나사처럼 국책연구기관이 축적한 데이터를 기업과 적극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의 경영 원칙은 이윤 추구인데 그 이윤이 단기적이냐 장기적이냐에 따라 기업 참여도가 결정된다”며 “나사 연구를 통해 수많은 우주과학기술 정보들이 생산되는데 이런 정보들은 상업적 가치가 아주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구글이 나사에 건물을 기증하고 나사의 방대한 데이터를 공짜로 처리해주겠다고 한 것은 구글도 데이터의 가치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자동화 시스템,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과 같은 4차 산업 기술도 데이터가 없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사는 기업이 우주산업에 적극 뛰어들 수 있도록 연구소 3곳, 미션센터 7곳을 두고 전문적인 연구·실험을 진행한다. 최 수석연구원이 몸담은 랭글리연구소는 전자기 장치, 음향, 우주인 구조 로켓, 항공기 착륙, 우주선 대기 진입 역학 등을 연구하고 글렌연구소는 항공기 엔진, 동력장치, 작은 규모의 추진체 등을 연구하며 에임스연구소는 항공기 실험, 슈퍼컴퓨팅, 로버(이동형 탐사 로봇) 등을 연구한다. 미션센터들은 인공위성, 우주선 발사, 우주탐사, 로켓 성능 실험 등에 주력한다.
나사가 연구원에게 예산을 배정한 뒤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모습도 주목할 만하다. 최 수석연구원은 “수석과학관에게 제출한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1단계 펀딩을, 1년 후 다시 선택되면 3년간 2단계 펀딩을 받는다”며 “이때 연구비를 어떻게 쓰든, 어떤 사람을 쓰든 그것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결정한다. 자유가 연구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사 조직의 행정 체계는 무슨 일이든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할 뿐 규정을 따지고 간섭하거나 제동을 거는 쪽으로 일을 하지 않는다”며 “성취한 것이 있으면 인정하고 바로 포상을 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