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가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미국 플로리다주 세인트오거스틴에 위치한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는 프로 골퍼만 입회를 하는 게 아니다. 골프 발전에 기여한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이름을 올린다. 그 중에는 유명 코미디언이었던 밥 호프(1903~2003년)도 있다. 호프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대회를 개최하는 등 골프 대중화에 크게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3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의 전시실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은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더 문 클럽(The Moon Club)’이다. 미국의 우주비행사 앨런 셰퍼드(1923~1998년)가 1971년 2월 6일 인류 최초로 달에서 휘둘렀던 골프채의 복제품이다. 이 클럽이 왜 호프의 전시실에 있는 걸까. ‘문 샷’의 아이디어가 호프에게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셰퍼드가 달에 가기 1년 전인 1970년, 호프는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을 다루는 특집 TV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위해 휴스턴에 있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을 방문했다. 언제나 골프채를 들고 다니는 습관이 있던 호프는 무중력 체험 등을 할 때도 골프채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셰퍼드는 골프볼의 비행을 통해 달과 지구의 중력 차이 등을 설명하면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마침 달의 암석과 모래 샘플을 채취할 수 있도록 설계된 도구가 골프채의 샤프트와 비슷했다.
셰퍼드는 휴스턴에 있는 리버오크스 컨트리클럽의 잭 하든이라는 프로골퍼를 찾아가 클럽 헤드 하나를 부탁했다. 그는 이 헤드를 나사의 기술팀에 들고 가 달의 토양 채취 도구 끝에 부착할 수 있도록 개조했다.
한때 셰퍼드가 나사 몰래 골프채와 볼 2개를 달에 가져갔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달 탐사 책임자는 처음에는 “절대 안 된다”고 반대했지만 셰퍼드가 끈질기게 설득하고 모든 과학 임무를 수행한 뒤 하겠다고 약속해 허가했다.
셰퍼드는 달에서 당황하지 않고 멋진 스윙을 하기 위해 벙커에서 미리 연습을 했다. 막상 달에서 샷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90㎏이 넘는 우주복은 몸의 움직임을 둔하게 해 한 손으로만 클럽을 잡아야 했고 헬멧은 시야를 가려 발을 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여기에 다운스윙 때 클럽을 강하게 내려칠 중력도 적었다.
처음 두 번의 샷은 먼지만 일으켰다. 마침내 세 번째 스윙으로 볼을 맞혔다. 하지만 섕크가 나는 바람에 볼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셰퍼드는 또 다른 볼을 달 표면에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제대로 볼을 때렸다. 셰퍼드는 “마일스 앤드 마일스 앤드 마일스(miles and miles and miles)”라고 외쳤다.
셰퍼드의 이 외침으로 인해 한때 공이 1마일 이상 날아간 것으로 추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 실제로 날아간 거리는 첫 번째 볼은 24야드, 두 번째 볼은 40야드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구에서처럼 제대로 스윙을 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볼이 공중에 떠 있던 시간은 30초나 됐으니 셰퍼드의 생각대로 달과 지구의 중력 차이 효과를 설명하는 데는 크게 기여를 한 셈이다.
그럼 이론적으로 달에서는 얼마나 멀리 날릴 수 있을까. 미국골프협회(USGA)는 “시속 185마일(약 297㎞)의 스윙 스피드에 45도의 출발 탄도로 날린다면 2.62마일(약 4611야드)을 날아갈 것이고 체공 시간은 1분이 넘을 것”이라며 “셰퍼드의 말처럼 ‘마일스 앤드 마일스’가 될 것”이라고 했다.
셰퍼드가 달에서 사용했던 윌슨 스태프 클럽헤드가 달린 접이식의 진품 6번 아이언은 현재 USGA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셰퍼드의 발자국과 디봇, 그리고 2개의 볼은 달 표면에 그대로 남아 있다. 깐깐하면서 위트 넘치는 영국의 R&A는 셰퍼드가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돌아오자 축하를 하면서도 “벙커 모래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다”고 농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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