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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3·1절 특집: 2019년 日 EUV 수출규제…'그해 우리는'





'그해 우리는.'

여러분, 2019년 여름을 기억하시나요? 국내 반도체 업계의 그해 여름은 악몽 같았습니다. 대한국 일본 수출 규제 사태를 겪은 해이기 때문입니다.

그해 7월. 일본 수출 규제 사태는 일본 정부가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트집 잡으면서 시작됩니다. 일본 기업들이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화학 소재를 한국으로 수출하지 못하게 하면서 말이죠.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 일본 반도체 소재 업체들이 독점하다시피 하는, 그리고 한국의 아킬레스건을 치명적으로 찌를 수 있는 소재였습니다.

지난 2019년 7월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해 열린 양국 과장급 첫 실무회의 모습. 연합뉴스


특히 이 사태로 우리나라 EUV 인프라에 대한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당시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7나노 EUV 공정을 도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이웃 반도체 소재 강국의 잽 한 방에 첨단 생산라인을 뒷받침할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생태계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자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졌죠.

당시 국내 업체들이 다양한 루트를 확보하며 사태는 일단락됐습니다. 끔찍했던 2019년을 겪고 난 후 우리나라에서는 EUV 생태계 확장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일어났습니다. 토종 소재 회사들의 포토레지스트 개발, 외국 업체들의 생산 현지화가 이뤄지면서 기대감이 커지고 있죠.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앞에 마냥 장밋빛 미래만 있는 걸까요. 혹시 우리나라 EUV 소부장 생태계에서 다시 냉철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없을까요. 지금 이대로면 모든 반도체 소부장 분야를 국산화할 수 있을까. 이런 점들이 궁금해 몇 가지 수치를 들여다보고 정보를 모아봤습니다. 그랬더니 핵심 소부장 분야에서 아직 우리가 극복하지 못한 다양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소부장 기술 독립의 중요성과 이를 위한 장기적 관심과 업계 간 끈끈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업계 메시지까지 모아 이번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그럼 EUV PR 현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EUV 소재: 포토레지스트·블랭크 마스크·펠리클

스미토모화학의 EUV PR. 사진제공=스미토모화학


EUV 포토레지스트(PR)부터 살펴보겠습니다. EUV PR은 EUV 빛으로 회로 모양을 찍어내는 ‘노광’ 공정 전 웨이퍼 위에 도포하는 액체입니다. 이 PR은 일본 업체들이 세계 9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JSR, 신에츠화학, 도쿄오카공업(TOK), 스미토모화학 등이 이 분야 강자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JSR EUV PR 수입량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려집니다. 삼성전자의 메모리·파운드리 분야 EUV PR 수입량 가운데 60~70% 이상의 절대적 양이 JSR 제품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2019년 일본 수출규제로 이들의 수출길이 막히자 삼성전자 등 국내 칩 제조사들은 JSR EUV PR '우회' 수입 방법을 택합니다. 일본 JSR과 벨기에 반도체 연구 허브 IMEC(아이멕)의 합작법인 RMQC에서 생산하는 EUV PR을 우리나라로 들여오는 방안을 선택한 것입니다. 벨기에에서 한국으로 건너오는 PR 대부분이 EUV PR로 파악됩니다.

반도체 포토레지스트 국내 수입 비율. 2019년 이후 벨기에의 수입량이 크게 늘어나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여전히 많은 양의 포토 레지스트가 수입되고 있습니다. 범용 PR 국산화도 아직 요원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자료=관세청


관세청 무역 통계에 따르면 벨기에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오는 PR의 양 2019년 수출규제부터 크게 늘면서 매년 증가세입니다. 아직도 국내 업계에서 JSR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방증합니다.

물론 극적인 전략으로 EUV PR 우회 수입로를 다변화한 것은 큰 수확입니다. 그러나 ‘극일’이라는 표현은 다소 무색합니다. 수출 규제 3년 뒤에도, 아직도 일본 자본이 들어간 곳에서 생산한 EUV PR이 상당량 사용되고 있는 ‘풍전등화’ 리스크가 지속되고 있어서입니다.

단순히 일본에서의 EUV PR 생산량이 낮아진 추세를 보는 것보다 △여전한 일본 회사의 위력 일본 정부 입김이 작용할 가능성 시장 기대와 달리 아직은 갈 길이 먼 국산화 등을 먼저 들여다 봐야 하는 게 포인트입니다.

일본 TOK의 한국 생산 거점인 송도 공장(왼쪽)과 미국 듀폰 화성 R&D 기지. 사진제공= 듀폰, TOK


게다가 아직 ‘국내 대세’ JSR은 한국에 EUV PR 생산 거점이 없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일본 수출 규제 문제 이후 △한국에서 EUV PR 외 범용(불화아르곤(ArFi), 불화크립톤(KrF)) PR 생산까지 시작한 TOK △EUV PR 생산 라인을 설치하고 국내 고객사와 긴밀한 협조를 하고 있는 미국 듀폰 △TOK 한국 생산 라인에 EUV PR 위탁생산(OEM)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신에츠 △국내 자회사 동우화인켐에 100억엔(1000억원)을 투자해 신규 PR 라인 구축을 발표한 스미토모화학해외 PR 업체들의 현지화 행보와는 다소 다릅니다.

JSR이 공개한 벨기에 법인 생산 설비 증축 현장. 사진제공=JSR 공식 동영상 갈무리


JSR은 최근 벨기에 법인에 반도체용 소재 생산 라인을 늘리는 증축하는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생산 현지화 전략보다 벨기에 법인 확장에 집중할 것으로 파악됩니다. 따라서 EUV PR 공급망 리스크가 잠재워진 상황이 아닙니다.

호야의 블랭크마스크. 사진제공=호야


EUV PR처럼 수출 규제 품목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EUV 공정에서 핵심 소재로 분류되는 EUV용 블랭크마스크 또한 일본이 독점 체제입니다. 블랭크마스크는 빛이 회로 모양을 머금고 통과하는 마스크에 회로 모양을 그려 넣기 전 상태의 평평한 판입니다.





이 소재는 일본의 '호야'라는 업체가 세계 시장에서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데요. 이달 3일 호야는 실적 발표회를 열고 "EUV 블랭크 마스크에 대한 고객사들의 요구가 늘어나고 있어 생산 능력을 최대화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고객사 안에는 EUV를 상용화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당연히 포함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차세대 EUV로 불리는 2나노 공정 이하 'High-NA EUV'용 블랭크 마스크도 네덜란드 ASML과 긴밀히 협력 중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기술 고도화와 독점 체제 유지 가능성이 큽니다.

이들의 강력한 경쟁사도 일본에 있습니다. 바로 신에츠화학인데요. 최근 이 회사는 EUV 블랭크마스크 양산 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공식 언급했습니다. 호야가 신에츠에게 '아직 기술적으로 올라오지 못한 것 같다'며 견제구도 던지면서 일본 굴지 소재 회사끼리 경쟁이 불붙고 있는 상황이네요.

미쓰이화학의 펠리클. 사진제공=미쓰이화학


EUV 마스크가 오염되지 않도록 공정 중 '덮개' 역할을 하는 펠리클 분야도 일본의 선전이 눈에 띕니다. 일본 미쓰이 화학은 세계에서 EUV 노광기를 단독으로 공급하는 ASML과 펠리클 라이선스를 공유하며 지난해 5월 양산품 판매를 시작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물론 국내에서도 2019년 이후 EUV 블랭크 마스크, 펠리클 개발에 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산은 아직 요원하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오랜 시간 노하우를 쌓은 일본의 영향력이 더욱 막강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국내 기술 내재화를 앞당기려면 소재를 사용하는 칩 메이커-정부-소재 회사 간 지속적이고 강력한 협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장비: EUV 트랙, 검사장비

EUV 반도체 장비 분야를 보겠습니다. 보통 'EUV 공정' 하면 EUV 노광기를 세계에서 단독으로 만드는 네덜란드 ASML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노광기 외 다양한 EUV용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도 일본이 상당히 강한 축에 속합니다.



우선 전통적인 반도체 장비 강자 일본의 도쿄일렉트론(TEL). 이 회사가 만드는 EUV용 '트랙' 장비는 세계 시장에서 100% 가까운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트랙 장비는 EUV 노광 전 PR을 도포하고, 노광 후에는 PR을 고온으로 구워내(bake) 단단하게 만드는 장비인데요. 기존 공정인 ArF 노광 분야에서도 상당히 강한 면모를 가진 TEL은 차세대 EUV 시장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미세 회로 증착, 식각 분야에서 글로벌 기술 경쟁력을 가지고 있죠.

TEL은 국내에 R&D 투자를 상당히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점이 괄목할 만 합니다. TEL 코리아는 최근 발안 공장에 SK하이닉스 수요에 대응하는 R&D 공간 확장, 삼성전자 화성캠퍼스의 지근 거리에 있는 거점에 약 2000억원을 들인 신규 R&D센터 증축을 발표했죠. 회사의 R&D 현지화가 국내 업계와 어떤 시너지를 가지고 올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UV용 광선패턴마스크검사(APMI)장비 분야에서는 일본 레이저텍이 세계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본사를 소재한 레이저텍의 연간 장비 생산 대수는 10대 이상 규모로만 알려집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인텔, TSMC 등 칩 업체들이 EUV 생산 설비를 크게 늘려나가고 있는 추세여서 앞으로 이 장비 쟁탈전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외에도 지난해 관세청의 수출입 통계를 보면 일본 반도체 장비 수입액 역시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수입 통계가 EUV 장비군만 포함된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기술력과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3년 전만큼 뜨거운 관심이 필요하다"

일본 수출 규제 사건은 열악했던 우리나라 반도체 생태계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일본 수출 규제의 여파는 아직 남아있습니다. 해외 유력 기업의 국내 생산 현지화와 토종 기업들의 기술 국산화가 예전보다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진쎄미켐은 ArF이머전 PR에 이어 EUV PR 양산 준비에 한창이고요. 삼성과 SK그룹 계열사들도 PR 사업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2019년 뜨거웠던 움직임이 향후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입니다. 업계와 정부가 당장의 위기를 넘긴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지는 않은지. 차기 정권은 EUV와 소부장 정책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질 지 등에 대해서 말이죠. 최근 국회 문턱을 넘은 반도체 특별법만 놓고 볼까요. 통과 절차가 상당히 지지부진했던 데다 인력 양성 방안 등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곳곳에서 나옵니다. 업계의 기대가 한숨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반도체 업계는 당장의 위기를 막아낸 것과 특별법 제정에 자신감을 가지는 것도 좋지만, 다시 현실을 냉정하게 점검하고 소부장 생태계 강화에 전력을 기울여야 지난 30년간 이어온 반도체 패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이들은 글로벌 소재 회사의 현지화와 국내 기업 활성화를 이끌어낼 파격적 인센티브, 미래 반도체를 이끌어 갈 인력 양성 환경 마련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긴장이 감도는 국제 정세와 치열한 반도체 패권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3·1절, 2019년 그해 우리를 한번 더 상기하며 기사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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