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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주주대표訴, 5대 그룹 모두 포함 전방위 '사정권'[뒷북비즈]

■수탁위 '기업가치 훼손' 주주대표소송 서한 발송

3월 주총 앞두고 본격화 예고, 재계 "연금사회주의 우려"

남용 방지 제도적 장치 필요 "결국 상처뿐인 소송…국민만 피해"





적극적인 주주대표소송을 예고한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현대자동차·GS건설·롯데하이마트 등 20~30개 기업에 기업가치 훼손을 이유로 주주대표소송 서한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1,000여 개 기업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이들 30개 기업을 우선 타깃으로 삼아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예고한 셈이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탁위로부터 기업가치 훼손 확인 서한을 받은 기업은 현대차와 GS건설을 비롯해 대우건설·현대제철·롯데하이마트 등 최소 20곳 이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관계자는 “이들 기업을 선정한 구체적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과거 경영과 관련해 형사 기소됐거나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은 기업 중 상위 20~30여 곳이 선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건설사의 경우 과거 담합 사건으로 공정위에서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이유로 서한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갖고 있던 주주대표소송 권한을 하위 기구인 수탁위에 넘기는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 개정안을 상정했다. 이 방안은 다음 달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서 의결될 가능성이 크다. 수탁위가 주주대표소송 권한을 공식적으로 넘겨받기에 앞서 소송 대상 기업 선정에 나선 셈이다. 재계에서는 수탁위가 오는 3월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본격적인 주주대표소송을 벌일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에서는 기금의 수익률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기금운용본부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수탁위가 대표소송을 맡을 경우 소송이 남발될 것으로 우려했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정권의 이해관계와 시민단체의 입김에 휘둘리는 행태를 보여왔다”며 “기업의 정권 눈치 보기가 심화하고 자칫 연금 사회주의가 현실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국민연금은 장기 주주가치 제고와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른 수탁자 의무 이행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과거 국민연금의 행태로 볼 때 ‘기업 벌주기’식 소송이 될 수밖에 없다”며 “주주대표소송이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 지분 5% 이상 상장사 300여곳

기업들로서는 주주대표소송의 대상이 대기업뿐 아니라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한 중견·중소기업 등 사실상 모든 기업에 이르고 기업의 모든 의사 결정이 소송으로 엮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위협 요인으로 받아들인다. 국민연금이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상장사만 300개사에 달하고 상장사 지분을 0.01%(일반 법인은 1%) 이상만 갖고 있어도 주주대표소송이 가능한 점을 고려할 때 상장사만 1,000곳 이상이 대상에 포함된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대상 기업은 물론 모든 경영 행위를 문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너무 커진다”고 토로했다.



특히 기업들은 주주대표소송이 추구하는 주주가치 제고나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이익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을 근거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먼저 주주대표소송이 빈발할 경우 국민연금의 재무적 손실이 커질 수 있다. 소송을 치르기 위해 로펌을 선임하는 등의 막대한 재판 비용이 발생하며 소송을 제기한 국민연금은 물론 이에 대응하는 기업도 상당한 인적·물적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승소하더라도 실제 남는 게 없을 수 있다. 기업은 패소에 따른 비용을 임원책임보험 등으로 해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피고가 되는 전·현직 이사가 내는 손해배상액은 국민연금이 받는 게 아니라 해당 기업의 일반 회계 자금으로 흡수된다. 기업의 장부가치는 높아질 수 있지만 기업의 전체 규모 대비 손해배상액의 비율이 지극히 낮은 경우가 많아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을 수 있다.

소송의 실익이 없다는 얘기다. 의미 있는 주가 상승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국민연금으로서는 소송 비용만 지출하게 되는 셈이어서 재무적 압박만 커질 수 있다.

기업들, 승소해도 이미지 추락 불가피

기업이 주주대표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추락한 기업 이미지를 돌이키기 어려운 것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주대표소송이 진행될 경우 전반적으로 기업 이미지가 추락해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가 많다”며 “결과적으로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떨어지는 만큼 소송이 바람직할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는 ‘상처뿐인 승소’라는 게 재계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미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기업 경영에 관여하며 주주권 행사를 충분히 하고 있다는 점도 주주대표소송의 당위성을 떨어뜨리는 부분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1~10월 주주총회에 747회 참석해 3,319개 상정 안건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 가운데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안건은 537개이며 실제 안건이 부결된 사례는 10건(1.9%)으로 조사됐다. 이는 국민연금이 대다수 주주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의결권을 행사하는 사례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제 단체들은 기업 경영이 극도로 위축돼 결과적으로 주주이자 국민연금 가입자인 국민들이 이중 피해를 볼 수 있고 미국에서도 헤지펀드가 소송 과정에서 임원과 합의를 보기 위한 압박 도구로서 주주대표소송을 악용하고 있다는 점 등을 반대 근거로 들었다. 결과적으로 국민연금이나 기업 모두 상처만 입고 이 과정을 대리하는 로펌의 배만 불린다는 것이다. 소송 자체가 기업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시각도 있다. 법무 조직이 잘 갖춰진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소송에 대응하는 것 자체로 기업이 휘청일 수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직원이 잘못을 하더라도 이사의 책임을 물어 주주대표소송을 치를 수 있고, 이 경우 등기임원뿐 아니라 총수도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기업 경영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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