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후장대 업종을 책임지고 있는 최고경영자(CEO)들이 부쩍 한숨을 쉬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방안이 마뜩잖아서다. 내년 경영 계획을 확정하고 실행 방안을 검토하기는커녕 ‘중대재해법 1호 기업’으로 찍히면 안 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들이 느끼는 압박은 공포에 가깝다. 공포의 실체는 이렇다. 중대재해법 1호 기업이 되는 순간, 해당 작업 현장과 기업은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실릴 것이다. 여론의 성토가 쏟아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살인 기업’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질 수도 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중대재해법 처벌 대상이냐 아니냐를 따져보는 논의가 합리적으로 이뤄지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신 CEO가 검경 포토라인에 서서 고개 숙이며 사과하고 법의 처벌을 받아야만 여론의 분노는 가라앉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공상이 아니다. 모호한 중대재해법 처벌 규정을 보면 충분히 일어날 법한 사건이다. 중대재해법은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사망자가 발생하면 사업주, 경영 책임자 등을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기업들은 중대재해법이 말하는 안전·보건 조치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얼마나 기업이 책임져야 하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없으니 우왕좌왕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실제 사고가 나고 소송에 대한 판례가 쌓여야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국가가 경영 불확실성을 키운 셈이다.
모호한 법 아래 기업들은 CEO 처벌을 최소화할 방안 강구에 열중하고 있다. 발단은 산업계 현실을 무시한 중대재해법 강행이다. 구체적인 안전·보건 조치가 무엇인지 알려주지도 않은 채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CEO를 처벌하겠다니, CEO를 구하려고 기업들이 동분서주하는 것이다. 모호한 법 조항 아래 CEO의 처벌만은 막자는 산업계의 몸부림이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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