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미니멀리즘과 정리 열풍이 불면서 책장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은 정리대상 1호로 지목되곤 했다. 특히 낡고 헤지고 색이 바랜 책들은 자리만 차지하는 골칫덩어리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공간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또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자 애장품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망가진 구두나 옷을 수선하듯 오래된 책을 수선해서 다시 읽는 사람들에 관한 기록이자 종이가 닳도록 읽고 또 읽으며 책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이 출간됐다.
이 책은 재영 책수선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특별한 사연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한국전쟁 때부터 써오던 70년이 넘은 일기장이나 귀퉁이가 찢어진 한정판 잡지에서부터 지금이라도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당장 받아볼 수 있지만 지나간 시간과 추억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수선을 의뢰한 책 등 그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은 소중한 책에 담긴 의뢰인의 기억, 그리고 책이 수선되어 재탄생되는 과정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책 수선은 어떤 방향을 원하는지 의뢰인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난 후 본격적으로 책에 남은 흔적을 통해 손상 원인을 찾아내고, 그 형태를 세심한 미감으로 낱낱이 살펴보는 순으로 진행된다.
인상 깊은 구절을 기억하려고 모서리를 접어둔 흔적, 책꼬리에 선명한 반려동물의 잇자국, 여기저기 야무지게 튄 라면국물까지 뒤틀리고 구겨진 책에는 그만의 서사와 아름다움이 있다. 재영 책수선을 찾아온 책들은 그 흔적들 덕분에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은 책 이상의 의미를 가진 책들과 그 사연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소중한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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