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이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장례는 “검소하게 해달라”고 했다. 생애 과오에 대한 깊은 사과가 담긴 유언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겸허하게 그대로 받아들여 위대한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고 영광스러웠다”며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점 및 저의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유족은 고인이 “국법에 따라 장례를 검소하게 치르기 바란다”면서 “자신의 생애에 이루지 못한 남북한 평화 통일이 다음 세대들에 의해 꼭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장지 역시 재임 시 조성한 통일동산이 있는 파주에 마련하는 것을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유언은 때로는 ‘물태우’로 불리면서도 북방 외교와 노동·부동산 문제에 대해 과감한 개혁 정치를 실현한 고인의 성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에게는 재임 중 물태우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군사정권 시절의 강한 리더십을 경험한 국민에게 노 전 대통령은 외모나 성품 면에서 우유부단하게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이 별명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매우 좋은 별명이며 나는 물 같은 지도자로 보이는 게 좋다”고 했다. 또 “겉으로 어떻게 보이든 대통령 심중에 강한 의지만 있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퇴임 이후 줄곧 외부 활동을 삼간 채 사실상 은둔해온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전립선암 수술 이후 오랜 투병 생활로 2003년 2월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식 이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2009년 10월에는 희귀병인 소뇌위축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후에도 천식·폐렴 등 건강 문제로 여러 차례 입원 치료를 받았다. 최근까지 노 전 대통령을 진료했던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는 “(노 전 대통령이) 저산소증·저혈압을 보여 26일 오후 1시 46분에 사망했다”고 밝혔다.
올해는 장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페이스북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근황이 알려지기도 했다. 노 관장은 4월 ‘아버지의 인내심’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아버지는 나에게 확실한 교훈을 주셨다. 인내심이다.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버티고 계신 아버지를 뵈면 이 세상 어떤 문제도 못 참을 게 없었다”며 노 전 대통령의 병상 생활을 전했다. 그러면서 “참.용.기.(참고 용서하고 기다리라)가 아버지의 좌우명이다. 정말 어려운 길임에 틀림없다”며 글을 맺었다. 노 전 대통령은 가급적 정치 현안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도 추징금 2,600억여 원을 2013년 완납했고 아들 노재헌 씨는 광주 5·18민주묘지를 잇따라 찾는 등 과거사에 대한 사죄를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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