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첨단 반도체 공정에 들어가는 각종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내재화 작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대외 갈등이 심화하고 각 대륙에서 반도체 자립화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발생할 수 있는 공급망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국내에는 세계 메모리 시장을 주름잡는 1·2위 기업이 있지만 이들을 뒷받침하는 소부장 생태계는 상당히 열악해 해외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삼성전자, EUV 포토레지스트 내재화
19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DS 부문은 국내 반도체 소재 업체의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PR) 샘플 제품을 양산 공정에 적용하기 위해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회사는 메모리 및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EUV 공정에 국산 PR 제품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하반기 양산 예정인 14나노 D램에 이 소재를 도입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안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14나노 D램에서 EUV를 적용하는 5개 레이어 중 다수의 레이어에 국산 소재 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EUV PR은 EUV 빛을 이용해 회로 모양을 찍어내는 노광 공정을 진행하기 위한 핵심 소재다. 이 소재는 일본 업체들이 세계 시장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일본 정부가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트집 잡으면서 EUV PR 수출 규제로 한국 반도체 시장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이 사태를 겪었던 삼성전자는 EUV PR 국산화 작업 외에도 소부장 공급망 다변화를 상당히 활발하게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 불화수소 국산화 진행
SK하이닉스도 반도체 소재 및 장비 국산화 작업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고 있다. 2019년 일본이 수출 규제를 할 당시 또 다른 규제 품목이었던 불화수소의 국산화 작업도 약 2년간 크게 진전됐다. 국내 불산 제조 기업인 램테크놀러지와 협력해 주력 메모리 반도체 팹이 있는 이천·청주 캠퍼스는 물론 해외 거점인 중국 우시 공장에서도 국산 불화수소를 공정에 투입한다. 회사의 최첨단 반도체인 10나노급 4세대(1a) D램과 176단 낸드플래시 공정에도 쓰일 수 있다. 불화수소는 웨이퍼에 묻은 불필요한 산화막 찌꺼기를 세정하는 역할을 하는 소재다. 램테크놀러지는 순수불화수소(HF) 용액 외에도 회로 구석구석에 있는 산화막을 세밀하게 깎아내는 완충산화물식각(BOE) 용액, 기체 형태의 에칭가스 양산을 위한 공장 증설을 준비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장비 국산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회사 내 램리서치, 도쿄일렉트론 등 해외 유력 장비 업체들이 독점하다시피 한 산화막 식각(옥사이드 에치) 장비 국산화를 위해 국내 장비 업체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美中日, 반도체 장비 기술 무기화
이처럼 국내 양대 반도체 대기업이 소부장 내재화에 적극 나서는 것은 최근 미국·중국 등에서 반도체 자립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 반도체 생태계는 갑작스러운 공급망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기초 체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공정에 활용되는 주요 장비와 소재는 물론 여기에 들어가는 원재료와 부품까지 내재화할 수 있는 꼼꼼한 생태계 정비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아직도 일본에서 들여오는 장비 부품이 상당히 많고 격차가 심하다”며 “정부에서 해외 의존도가 높은 부품을 선별해 집중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소부장 외에도 데이터 고도화에 대비한 차세대 메모리 설계 내재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올려 대역폭을 늘리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넘어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가 단 한 개의 칩에서 연동할 수 있는 컴퓨팅인메모리(CIM) 기술 개발에 매진하며 ‘메모리 초격차’를 겨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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